얼마 전 검찰은 듣기에 매우 생소한 ‘신뢰인프라 교란사범전담반’을 설치한다고 했습니다. 학위 자격증 각종 인증서의 위조 사칭 등을 수사하여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는 범죄를 단속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변양균 신정아 사건’을 계기로 나온 처방이어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검찰이 ‘가짜’를 가려내는 것만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짜’의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학벌주의와 도덕불감증을 들고 있으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거짓’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거짓’은 단순히 개인의 양심 문제로만 여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문화적인 현상으로까지 굳어졌다는 점에서 ‘거짓의 사회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짓이 개개인의 삶을 강박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점액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온통 거짓으로부터 자양분을 받는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정직한 개인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정직은 조직의 거짓으로부터 몰매를 맞습니다. 개인이 살기 위해서는 조직의 거짓에 순치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의 거짓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거짓을 더 큰 ‘공익’을 위한 희생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의 ‘거짓의 사회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름으로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제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자기 배반의 역사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분단과 동족간의 전쟁은 거짓을 생존의 방편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짧은 기간에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독버섯입니다. 우리는 근대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개체의 분화를 겪지 않은 상태에서 근대화를 추진했습니다. 책임적 자아에 대한 각성 없이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린 것입니다. 게다가 근대성의 가치, 근대적 사유, 근대화에 필요한 지식, 기술, 경험 등을 우리 스스로 축적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이 서구 사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탐구 축적한 것들을 우리는 단기간에 ‘전수’ 받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지식인은 지식의 보편화를 위해 헌신하기보다는 지식의 독점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각고의 노력으로 축적한 지식과 기술을 어깨 너머로 손쉽게 습득 공급하는 구조로부터 지식사회가 형성되고, 관료계급사회가 형성됨으로서 패거리와 학벌주의라는 병리현상이 심화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식의 편중과 독점은 자연스럽게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독점하는 구조를 낳게 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는 거짓의 진화를 가능케 한 토대가 된 것입니다.

거짓의 진화는 다른 사람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자기 것으로 둔갑시키는데도 익숙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대학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연구논문에 자기 이름 끼어 넣고 연구비 나눠먹기, 제자들의 연구실적을 지도교수의 것으로 둔갑시키기, 연구 실적은 없으면서 명성만으로 대가 행세하기, 교수 채용에서 인맥 싸움하기, 연구 핑계로 해외여행 다니면서 서구학자들의 논문을 표절해서 써먹는 것 등은 너무나 흔해빠진 일입니다. 최근에 지식인 사회에서 ‘표절’이 문제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 사회 교수, 언론인, 의사, 법조인, 고위관리, 정치인, 예술인, 종교인 등 특권층의 중핵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거짓의 뿌리는 바로 지식사회인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우월적인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학교, 교육 시스템도 구축해왔습니다. 오늘의 학교교육, 입시제도의 밑바닥에는 이런 본질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발독재 시절에 지식인들은 권력에 기생함으로서, 시장경제로 넘어오면서부터는 권력과 자본에 기대어 기득권 보호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치열한 탐구로 지식 생산자가 되어야 할 수많은 교수들이 폴리페서 polifessor가 되어 정치 실세들의 ‘입’ 노릇을 하는 것도 알고 보면 그들의 패거리 속성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거짓은 이제 개인의 양심만으로는 해소시킬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잠 30:12)가 뼈아픈 자기 정화를 하지 않고는 내일의 희망은 뒤로하고, 최소한의 품위마저 기대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