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숲에서는 물총새가 울었다. 부리가 길고 초록색 날개가 반짝이는 것들이 갈잎을 흔들며 쪼르륵, 쪼르륵, 울고 있다.
순덕이가 그물망을 들고 오더니 냇둑에 쪼그리고 앉았다. 게들이 일제히 구멍을 찾는다. 급한 김에 남의 집으로 들어갔던 놈이 두 눈을 세우고 나와 쏜살같이 제 구멍을 찾아든다. 햇볕이 따갑다. 게들이 하나 둘 다시 눈을 세우고 구멍에서 나온다. 엄지발과 네 발 모두 털이 난 놈, 털은 없이 딱지만 반들반들 딱딱해보이는 놈, 발 하나만 크고 붉은 놈, 그 밖에 크고 작은 이런저런 것들이 개흙을 밀어내며 기어나와 거품을 내뿜고 있다.
그림같이 앉아있던 순덕이 손이 번개같이 개펄을 가로 쓴다. 몇 마리의 게가 순덕이 손 안에 갇혔다가 깡통 속으로 들어간다. 다른 게들은 이미 흩어졌다. 도망친 게들이 들어간 게구멍 속으로 순덕이 팔뚝이 쑥, 들어갔다 빠져나온다. 손아귀엔 어느새 게뿐만 아니라 망둥이까지 한 마리 잡혀있다.
순덕이가 납작한 돌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게를 한 마리씩 돌멩이로 짓이긴다. 게딱지가 깨지며 풀물이 번진다. 갈잎을 먹은 게가 피를 토해내는 것이다.
으깨진 게를 베수건으로 싼다. 그리고 게를 짓찧던 돌멩이를 노끈으로 묶어 그물망에 매단다. 네 귀가 방패연 모양으로 줄에 묶인 그물망이 돌의 무게로 천천히 냇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으깨진 게 냄새를 맡고 물고기들이 망 속으로 들어오면 조심조심 건져 낼 참이다.
“이쪽이야!”
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으면서 가만히 있었어?”
“응.”
순덕이가 옷을 입은 채 물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온다.
“아이 시원타!”
허리와 양쪽 무릎 쪽에 고무줄을 넣은 검정색 광목바지가 물속에서 풍선같이 부풀어 오른다.
“밥은 먹었어?”
“밥은 무슨……. 내 오늘 늬헌티 보여줄게 있어서 보자구 혔는디 먼첨 와 있었네.”
“뭔데?”
“날 따라오면 돼.”
순덕이가 물장구를 치며 헤엄을 쳤다.
“난 저 쪽에 옷도 벗어놨는데.”
“그냥 따라와, 들판에 누가 보겠니?”
수리조합물이 벙벙하게 흐르는 냇물을 얼마쯤 헤엄쳐 내려가면 일정 때 세운 시멘트 수문이 나왔다. 수문을 지나면 개펄과 갈대숲이었다. 순덕이는 물에 젖은 옷을 입은 채 갈대숲으로 들어가고 나는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옷 있는 곳으로 뛰어 왔다. 뒤에서 순덕이가 깔깔거리고 웃었다.
강의 하구쪽에 작은 모래섬이 있었다.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 그렇지만 물이 빠지면 이렇게 섬이 되거든? 내 땅이야.”
순덕이가 말했다.
꼭 말조개 모양이었다. 바닥 밑은 다져진 개펄이었다. 그 위에 모래톱이 형성되고 있었다. 갈대숲이 우거지고 군데군데 잡목이 자라고 있었다. 이파리는 개흙이 더께더께 묻어있었다.
그 가운데 버드나무가 두세 그루 있고 놀랍게 사과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다. 새끼줄로 버팀목에 묶여있었다. 일부러 심은 나무였다.
“ 이 사과나무는 전에 살던 집에서 캐 온거야. 이사올 때 가져와서는 뒷간 옆에 심었다가 지난 봄에 옮겨 심었어. 내 나무야.”
순덕이가 다시 말했다.
“제련소 쪽에 하구 둑막이 공사가 시작되면서 여기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어. 그때 나는 이 섬을 내 섬으로 정했어.”
순덕이가 젖은 옷을 입은 채 모래 위에 누우며 말했다.
순덕이는 나 보다 두세 살 위였다. 어른들에게 조숙하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에서는 박덕순으로 불렸다. 입학때 남들 다 나오는 취학통지서가 빠져있어 알아보니 그때까지 출생신고조차 안돼있어 이장님께 부탁했단다. 그런데 술취한 이장님이 깜박하고 순덕이를 덕순이로 신고해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난 나중에 우리 아빠같이 골골하며 평생 남의 집 허드렛일이나 해주는 그런 남자에게 시집 안가. 똑똑하구 건강한 신랑 얻어 내 땅에 곡식 심구, 닭 키워 병아리 까구, 아이들 능금배 실컷 먹여 키울 거야.”
순덕이는 그날 이런 말도 했다.
엄마한테 박씨부인전 얘길 듣고, 자기집도 아니면서 박씨부인처럼 울타리로 측백나무를 심었는데, 난리가 나면 그 나무들이 모두 병정이 되어 적군을 무찌를 거라 생각했는데, 물난리 때 물뱀들만 기어오르고 물이 빠지고 나니 모두 죽어버렸다고 했다.
꿈같은 이야기를 꿈꾸듯 말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