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한다. 어쩌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나름대로 필요한 준비를 하게 마련이다. 특히 외국을 갈 때는 그 지역의 지형과 문화, 명소들을 미리 인지하고 간다. 먼저 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지역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을 읽고 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챙겨가곤 한다. 준비를 한 만큼 여행은 순조롭게 마련이다. 어쩌다 꼭 필요한 물건을 챙기지 못했거나,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을 준비하지 못하고 떠난 여행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행에는 단순한 관광여행도 있지만 신앙의 자취를 느끼고 체험하는 순례여정도 있다. 특히 순례의 여정은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며, 신앙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깊이 주님을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다. 나도 기회가 되면 걷고 싶은 순례길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에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데, 오래 전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야고보의 신앙을 생각하며 이곳을 찾아 왔다. 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하면 성당의 신부와 수녀들이 안내하였다. 순례자들에게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보여 주고, 야고보의 행적을 들려주고, 함께 기도하고, 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인도하였다. 하루에도 같은 일을 몇 번씩이나 하였다. 그들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였다. 순례자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 있는 감격의 길이었으나 안내하는 이들에게는 지루한 일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대충 안내를 하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신부가 고민하게 되었다. 일생일대의 감격을 기대하며 찾아 온 순례자들을 최고의 정성으로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신부와 수녀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여러분,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순례자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찾아 오셨다고 생각합시다. 주님이 내 앞에 서 계신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안내합시다. 최선을 다하여 설명하고, 정성을 모아 기도하고, 주님께 하듯 식사를 정성으로 대접합시다.”

이러한 자세로 안내를 시작하였더니 찾아 온 순례자들마다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특히 순례자들을 안내하던 신부와 수녀들이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이 경험을 가지고 만든 영성 훈련 프로그램이 바로 꾸르실료 Cursillo 운동(가톨릭 평신도 재교육 운동)이다. 그래서 꾸르실료 정신은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골3:23)이다.

절친 임목사가 보내온 사진 몇 장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친구는 지난달에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왔다. 프랑스 생쟝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800㎞에 이르는 길을 한 달 넘게 걸었다. 순례 길을 완주한 후에 성당 광장에 배낭을 베고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이 몹시 평화로웠다. 수염을 깎지 않은 모습은 예수님을 닮아 있었고, 그의 얼굴은 광채가 났다. 얼마나 피곤했겠나. 그런데도 그는 생기가 돌았고, 성취감에서 오는 평안함이 얼굴 가득했다. 그리고 두 발을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비록 그동안 혹사당하여 부르트고 부어 있었지만 온 몸을 지탱하고 목적지까지 소임을 다한 대견함이 배어 있었다.

사실 친구가 연초에 산티아고 순례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에 멋진 계획이라고 함께 즐거워하면서도 내심 걱정했었다. 평상시 운동도 좋아하지 않고, 책 읽는 것과 가끔 산행하는 것이 전부였던 친구가 한 달 넘게 걷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 우려를 비웃듯이 친구는 순례의 여정을 무난히 마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산티아고 광장에 누워 있었다. 그의 환한 얼굴에서 꾸르실료 정신을 접한 감동이 묻어난다.

오늘 우리세상은 너무 어수선하다. 특종보도를 앞세운 뉴스 홍수에 떠내려갈 것 같다. 어떤 야당보다도 더 거칠고 과격하게 정권을 질타하며 박근혜 정부와 선긋기를 하는 종편채널은 상황이 바뀌었음을 알려준다. 지도력을 상실한 권력자의 몸짓이 어색하다. 비선실세가 공조직을 마비시키고, 국정을 유린하여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았다. 탐욕으로 인하여 우리는 길을 잃었다.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심정으로 주님오심을 소망한다. 대림 절기는 나의 선 자리를 성찰하게 한다.

“무슨 일이나 사람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골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