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6 / 2018

 

 

 

 

 

 

 

 

 

 

 

 

  공동체 만들기

 

책이 맺어준 내 인생의 만남 (1) --- 이태영 박사

 

 

 

 

 

 

 

 

 

 

 





황 혜 영

교수
프랑스문학 전공 서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rayondor@hanmail.net






 


사춘기 시절 내가 본받고 싶은 삶으로 가장 먼저 꼽았던 분이 이태영 박사다. 물론 그분 생전에 단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내 삶에 그분이 나에게 준 영감과 직접적인 영향을 생각하면 내 인생의 만남을 꼽을 때 이 만남도 그 중 하나로 꼭 넣고 싶다.

처음 이태영 박사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집에 놓여 있어 우연히 펼쳐본 명사들의 삶에 대한 고백이 담긴 책에서다.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책에 실린 이태영 박사의 짧은 글 제목 “고해에서 미소 짓는 여자”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글을 쓰다 문득 책제목이 궁금해져 검색해보니 “명사 27인이 소개하는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이라는 부제가 달린 <뜻을 세워 살자>(1984)라는 책이다.)

그 글에서 이태영 박사는 어릴 때부터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반대하고 당차게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자 하였던 삶을 고백하고 있었다. 마침 딸이라고 차별 않고 자신의 꿈을 뒷바라지해주셨던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에 그녀는 이화여전에 입학하여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자마자 야당 정치인이었던 남편 정일형 박사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새색시가 삯바느질을 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에 남편이 그녀를 ‘고해에서 미소 짓는 여자’라고 불러주었다고 하는 대목에서 감동과 존경심이 느껴졌다. 정일형씨도 출감한 뒤 ‘이제 보따리를 바꿔 맵시다.’라며 아내가 늘 바라왔던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관의 꿈을 실현하도록 외조를 해주었다 하니 남편의 넓고 깊은 인품도 귀감이 될 만하다. 이태영 박사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엄마이자 주부로 다시 대학입시에 도전해 서울법대 홍일점으로 합격하고, 그 후 사법고시에도 패스하여 법관이 되고자 했으나 남편이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발령을 내주지 않아 변호사로 전향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열고 당시 억압받고 차별받는 여성인권과 가정보호를 위해 생을 바친다.

당시 여성이 처한 차별과 제약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나간 이태영 박사의 용기와 의지는 청소년기부터 늘 나에게 도전과 영감이 되었다. 이태영 박사의 삶이 내게 귀감이 되었던 것은 물론 여성이 단 한 명도 합격한 적이 없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되었다는 그녀가 이룬 성공과 업적에도 있지만 그보다 더 나를 매혹시킨 것은 그녀의 삶의 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아닌가 생각한다. 삯바느질을 하면서 옥중에 있는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삶의 무게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인간됨에서 그리고 여자이자 엄마이며 서른 살이 넘은 나이라는 아무나 뛰어넘기 어려운 제약과 한계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그려왔던 꿈을 이루어나가는 인내와 의지에서 느껴졌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신뢰가 나에게 따르고 싶은 발자취가 되었다.

자신이 성취한 성공을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여전히 차별과 고정 관념에 희생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많은 여성들을 위해 그리고 위기에 처한 남성들을 위해 헌신하여 우리나라 가정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데 기꺼이 바치고자한 그분의 높은 이상과 그 헌신은 늘 무엇을 위한 이상인지 늘 돌아보게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태영 박사처럼 법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 나는 그분과 다른 분야로 들어섰다. 하지만 내가 이태영 박사에게서 닮고 싶었던 것이 어떤 타이틀이라기보다 부당한 굴레와 관습, 스스로 자신에게 지우는 한계를 거부하고 진취적으로 꿈을 성취해나가면서도 부드러움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그분의 기품 있는 인간됨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분은 내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이태영 박사는 자신의 생각과 살아온 삶에 대해 담담히 고백해놓은 짧은 글로 사춘기 나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훗날 자신의 삶에 중요한 만남들을 소개해놓은 또 다른 책을 통해 돌아가신 뒤에도 김영운 목사님과의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을 맺어주시며 내가 신앙의 길로 한걸음씩 들어오는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남편 정일형 박사는 자기를 ‘고해에서 미소 짓는 여자’라 불렀다지만 나는 그분을 ‘죽어서도 은혜를 베푸는 여자’라고 부르고 싶다.(다음호는 김영운 목사와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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