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018

 

 

 

 

 

 

 

 

 

 

 

 

  성서연대

 

목회일기 1 - 믿음 혹은 만용

 

 

 

 

 

 

 

 

 

 





이 준 우


목사
새샘감리교회
ch8131@hanmail.nete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지금도 부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사람들, 특히 적어도 2, 3대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목양의 길을 가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분명하고 드라마틱한(?) 소명의 증거를 갖고 목양의 길에 들어선 분들입니다. 그것은 내가 교회라고는 들어보지도 못한 유교적 가문에서 태어나 아직도 남의 옷을 입은 듯 신앙생활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고, 목회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목회자가 되어서 실수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을 목회자로 만난 교우들 앞에 늘 미안할 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제대로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못해도 태어난 생명이 세상을 살아가 듯 어찌어찌 목회자로 보낸 세월이 40여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요, 거룩한 신비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그 분이 나를 택하고 부르신 증거(?)를 찾는다면, 크리스마스가 뭔지도 모르시면서 추운 겨울날 5일장에 가셨다가 변화무쌍한 종이꽃(?)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아버지가 사다주셨던 아련한 추억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뭔지도 아들이 목사가 된 후에야 아신 분이셨는데! 또 하나, 읍내에 사시던 이모댁과 붙어있어서 사촌과 뛰놀던 마당이 나중에 보니 유서 깊은 감리교회였습니다. 물론 이모댁은 골수 불교신자로 외동아들이 용문사 은행나무 덕분이라고 믿는 분들이었고.

늦깎이로 입학한데다 5·18로 휴교령이 내려 졸업까지 3월로 미뤄졌던 그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목회지에 대한 걱정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 가정도 아니었고, 입학 전 다니던 교회도 감리교회가 아닌데다 몸까지 남들 같지 않은 나는 믿음보다는 불안에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어디나 줄과 연이 힘인 세상인데 목회지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정확히 그해 2월말, 내게도 행운의 손길이! 섬기던 교회 목사님이 갯마을 면소재지 교회를 소개하셨습니다. 그 지방 감리사와 약속이 되었다면서. 하지만 나로서는 가보고말고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멀미심한 몸을 추스르면서 몇 번씩 차를 갈아타고 소개받은 감리사님댁을 찾아갔습니다. 그날 밤 늦게 귀가하신 감리사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누군가와 계속 통화만 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말씀만 기다리는데 약속하신 교회는 다른 사람이 간다며(그때 이미?), 인근에 교역자가 없는 교회가 있으니 가서 주일 설교나 하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서둘러 찾아간 교회는 음산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학생 서넛이 뒷산에서 주어 온 솔방울로 난로를 피우느라 연기만 자욱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종탑은 곧 무너질 것 같았고. 나름 제법 큰 예배당은 폐가 廢家 비슷했습니다. 소개랄 것도 없이 예배를 인도하고 났는데 한 분 계신 노인 집사님이 저녁에도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얼떨결에 대답을 한 죄로 저녁에 들어가니 사방이 흑암이었습니다. 겨우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한참을 기다리니 앳된 청년 하나가 나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험(?)에 들기 전까지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모였던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이럴 수가 있을까? 이미 늦은 밤이었지만, 청년의 오토바이에 실려 이전에 나왔던 교회 직분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집집마다 심방(?)을 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이럴 수는 없다, 내가 2주 후면 졸업식을 하고 올 테니 신앙생활 잘하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늦은 밤 대문을 두드리고 쳐들어간 전도사를 박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성적인 내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섬기던 교회 목사님은 물론이고 주변사람 모두가 말렸습니다. “세상을 몰라서 그렇다고!” 그때는 그 분들이 왜 그리 믿음이 없어보였던지. 학생 셋과 밀린 전기요금 고지서 그리고 비가 줄줄이 새고 바람이 제멋대로 목소리를 내는 예배당과 함께 내 목회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한 생활도구와 연탄, 쌀자루를 싣고 달리는 용달차에서 어머님은 내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때 내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 봅니다. 믿음이었을까, 만용이었을까? 누군가가 내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똑같이 행동했겠냐고, 그렇게 결정하겠느냐고? 나는 대답할 수가 없어 웃음으로 넘겼습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타락한 것인지, 아니면 철이 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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