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날이 5달 남짓 남았습니다. 새천년의 첫번째 10년 주기 decade를 성공적으로 넘기면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구에서는 세계육상경기, 인천에서는 아시안 게임, 여수에서는 세계박람회, 평창에서는 동계올림픽을 열 희망과 꿈이 익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바야흐로 GNP 3만 불 시대를 넘어 선진국에 진입하는 과제 또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듯 중대한 시기에 우리를 바르게 이끌어 나아갈 대통령을 선출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중차대한 역사적 시점에 설 때마다 우리가 또 하나 챙겨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우리를 잘 살펴서 무엇이 부족한가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머리도 좋고, 재주도 좋고, 잘 생기고, 여느 민족보다 기 氣도 센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길래 우리는 아직까지 다른 여러 나라들을 멀찌감치 앞서가지 못했을까요? 우리에게 부족한 2%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 부족한 줄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설령 누군가 일러주었더라도 그것을 부정하고,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는 듯이 행동했지 않았을까요. 성경 말씀에도 있듯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될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자기기만에 빠질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허장성세 虛張聲勢입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명품이 잘 팔리는 나라, 고급 외제 승용차도 비쌀수록 잘 팔리는 트렌드가 형성된 것은 허장성세의 명백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유류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도 탓할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거품이 끼었다면, 거품이 낀 것을 인정하는 것이 첫째요, 그것을 서둘러 거두는 일이 둘째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품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분들의 희생과 눈물겨운 노력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을 끌어안고 개개인이 열심히 일하며 능력을 발휘하는 시민들이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학교 교육의 문제가 나라 안팎에서 끊임없이 지적되며 비판받지만,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교회가 비판을 받아도 여전히 그 교회를 끌어안는 충실한 신도들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자동차를 외국에서는 헐값에 팔고 국내 시장에서는 비싸게 팔아도 그것을 참아주는 소비자들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정치인들이 몸싸움을 하고 추태를 부려도 묵묵히 참는 유권자들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이런 착한 시민의식을 지도자들이 무시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모자라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를 찾아봅니다.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사회통합에 대한 분명한 이해, 더 나은 삶의 질에 대한 바람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함께 아우르고 실현할 수 있는 상상력이 모자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시민과 지도자들에게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냉엄한 현실에서 살고 있지만, 비전을 갖고 자신들이 갇혀 있는 상자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발걸음을 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육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도 달달 외워서 시험을 보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기금에 상당한 기부를 하는 기업들까지도 부당이득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이해타산의 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권을 잡아보겠다고 나서는 후보들도 사회통합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저마다 유권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은 있으나 서로 경쟁하기에만 급급하니, 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꼴입니다.

무릇 참된 지도자는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비전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길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하다면 국민들의 희생을 호소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우리가 눈앞의 자기 이익에만 급급한 타성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모두가 실패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시키고 전체를 생각하는 공동체의식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이렇게 지도자와 시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에 대한 비전과 예언자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올라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