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멈이 돌아온다. 시아버지 제수 마련, 들고 이고 돌아온다. 늘어진 외손주 불알, 생각만 해도 입 벌어지고 가만있어도 웃음 난다. 삼대독자네 시집가서 기다리던 손주 녀석, 사돈댁네 체면 서고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해산관이라 말했지만 시절이 좋고 보니 어미 할 일 별로 없다. 의사 간호사 아이 받고 미역국은 물론이요, 산후조리까지 도맡으니 그야말로 굿 구경에 떡만 먹으면 되는구나. 사위는 사위대로 퇴근 때마다 맛난 음식, 사장어른 어른대로 왔다갔다 싱글벙글, 안사돈도 팔 걷어붙이고 별미까지 해다 대니, 더더구나 앉아 있을 수 없어 공연히 왔다갔다. 삼칠일 다가오고 제삿날 또한 낼모레라, 날아갈 듯 기분 좋게 사돈댁을 하직하고, 나박김치 담그려면 어서 가야 된다면서 핑계 대고 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사는구나.
생조기 한 마리에 마른 명태 두 마리에 밤 대추 집에 있으니 사과 다섯 개 배 네 덩이, 곶감도 준비하고 산적거리도 사는구나. 이것저것 둘러보다 영감 담배 사다보니 증조부 제사 지내러 올 손주 녀석 생각나고, 올 때마다 지 에미랑 반찬 때문에 티격태격, 에라, 모르겠다. 쏘시지도 한 봉 사고…… 사탕에 초콜릿까지 한 봉지씩 사 넣는다.
그러고 보니 며느리한테 말 들을 일만 저질렀네. 그래도 나는 좋다, 할멈은 또 입 벌어진다.
보따리가 도로 두 개, 하나는 등에 지고 하나는 손에 들고 버스에서 내려 걸어 성황당 고개 넘어 논둑 밭길 다 지나서 사립 안으로 들어서는데
“아니, 저건 뭣이여?”
집 떠날 때 빨아 넌 조끼 아직 그냥 걸려 있고
“저 비니루 고깔은 또 뭣이당가?”
손에 들었던 보따리 청마루에 내려놓고 부엌으로 들어가 냉수 한 바가지 떠 마시고 토방 아래로 내려서더니 빨랫줄 떠받친 바지랑대 손을 막 대려는데, 그때 마침 어디선가
“건드리지 말어!”
고함소리 먼저 들리고 쏜살같이 내달으며 할아버지 손짓으로 쉿, 할머니 앞을 막아선다.
“…….”
“건들면 안돼야! 조끼주머니 속에 새가 알을 품는단 말여.”
맨발의 할아버지가 숨이 찬 듯 말 더듬네.
“야?”
“딱새 한 쌍 날아들어 조끼주머니에 둥질 틀고 벌써 열흘도 넘게 알을 품고 있어. 고속도로 건너 아파트촌 친구네 집 초상나던 날인개벼.”
“…….”
"길조여! 길조라고. 그렁게 고것이 외손주 낳던 날인개벼. 그렁게 그런중 알고 어여, 조용히 안으로 들더라고”
할아버지가 할머니 돌려세우고 등을 자꾸 밀어댄다.
“가만 기슈, 알았응게. 이 손일랑 놔봐유.”
“그러고 저러고 간에 낼모레가 연휴겠다, 제삿날 종수놈 올 텐디 그것이 걱정이구마.”
할아버지, 여전히 할머니 등 떠밀며 자기 말만 늘어놓네.
“종수가 어쨌다구유?”
“손주라면 그저 귀도 멀지.”
할머니 청마루에 올라 보따리 속에서 권련봉지 꺼내놓으며
“종수한테 전화 왔다구유?”
“전화는 무슨, 낼모레 올걸.”
할아버지 모른 척, 핀잔 주듯 하고 권련봉지 뜯는구나.
청마루에 두 노인네 나란히 앉아 있고
빨랫줄에 딱새 한 마리 그린 듯이 앉아 있고,
겨우내 할아버지 입고 뭉갠 조끼주머니에 새 한 마리 알을 품고
건너편 산 숲속에서 느닷없이 장끼 한 마리 날며 꿩꿩!
숨죽이게 고요한 봄날이 또 하루 가는구나.
산골짜기 두 늙은이 무슨 재미로 사느냐면
할아버지 혼자 웃으며 대꾸하는 말이 있다.
어쩌다 호젓할 때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거야 인간세상 그 누구나 매한가지
산골이라 말하지만 적막한 것만도 아니라네.
산만치 밤낮 없이 이런저런 소리 들리는 곳도 드무니
보이는 데서는 딱새 박새 직박구리,
보이지 않는 숲에서는 호호호호 호오 검은등뻐꾸기.
꾀꼬리와 딱따구리 멧비둘기,
거기다 뽀뽀뽀뽀 보오 두견새요,
호오오 호켓교오 휘파람새.
쏙쏙쏙쏙 쏙독쏙독 쏙독새요,
호오오오 호오오오 호랑지빠귀.
우우 후후후우 올빼미도 울음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