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째 또 이런 일이’ 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유행어처럼 오르내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우리 국민들은 비록 입밖에 내지 않더라도 가슴 속에서는 이 말이 우글거리지 않을까요. 어째서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은 받지 말았어야 할 돈을 받고 부적절한 처신을 하여 국민의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는단 말인가, 이것은 세계에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대개는 그런 심정일 것입니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또 일어나는가? Why is this happening to me again?"라는 책의 저자 마이클 라이스 Michael Ryce는 사람들이 저마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 사고, 실수를 되풀이하면서 이 말을 되뇌는 것을 주목합니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하게 되는 것은 저마다에게 주어진 힘을 잘못 쓰기 때문이고, 그렇게 힘을 남용하는 까닭은 자신의 격정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라는 말을 ‘태초에 에너지가 있었다 In the beginning was the Energy’라는 말로 패러디합니다. 우주 속에 있는 에너지는 태초부터 하나님에 의하여, 자연에 의하여, 사람에 의하여 쓰여 왔습니다. 문제는, 그 에너지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부적절한 처신을 놓고 오늘 많은 사람들이 법적 판단이냐 정치적 판단이냐를 놓고 고심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쪽으로 판단을 내리든, 국민도 국가도 더 이상 체면을 잃거나 상처입지 않도록 지혜를 찾아야 할 일입니다. 잘못을 분명히 가려야 합니다. 잘못이 판단되면 말할 나위도 없이, 당사자는 역사와 국민 앞에 참회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용서받고 화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국민이 받았던 ‘상처’는 ‘복’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상처와 복을 blessure라는 한 단어에 담아내는 뜻을 우리 국민들 역시 가슴 깊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사회 속에 힘을 바르게 기르고 쓰는 품이 성숙해져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힘은 남을 지배하는 대신 남을 받들어 주고 뒷받침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힘은 대개 열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분별력, 2. 판단력, 3. 감화력, 4. 친화력, 5. 소통력, 6. 설득력, 7. 호소력, 8. 경쟁력, 9. 공격력, 10. 방어력.

어떤 힘이든 남을 지배하는 힘으로 쓰일 수도 있고, 섬기는 힘으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1번부터 5번까지는 주로 남을 받들고 섬기는 힘으로 표현되는 데 비하여, 6번부터 10번까지는 남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힘으로 표현되기 십상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설득력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개는 결론부터 내려놓고 상대방이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힘입니다. 대화는 남을 생각하고 남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자 하는 쌍방의 노력이지만, 설득은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주입시키고자 하는 하향적인 힘으로 작용하기 쉽습니다. 설득에 실패하면 강압하게 되고, 그것으로도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폭력에 호소하기 마련입니다. 대화와 소통은 쌍방적이지만 설득과 호소는 다분히 일방적일 수 있습니다.

힘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가꾸고 기르는 데에 쓰여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뜻하는 competition이라는 단어는 원래 자질과 능력을 뜻하는 com- petence와 같은 뿌리를 지닌 말입니다.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누구를 의식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길러서 쌓은 결과 나타나는 열매여야 합니다. 경쟁력은 결국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 끝에 기르고 얻고 쌓아올려져야 마땅합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장미란, 김연아 선수들이 국민 앞에 보여주는 힘은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긴 멋진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에너지’를 우리는 어떻게 써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