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헌 우리 애기씨
저승으로 들어간다
에라, 길 열어라
길을 닦어라……

장고소리, 꽹과리에 제금소리까지 어우러지고 무슨 냄새도 풍겼다.
얘, 넌 누구니? 나는 혼자 웃었다. 마치 우리집 강아지에게 말하듯, 사람에게 이름묻듯 말했던 거다. 하긴 ‘누구니?’ 하고 묻는 건 이름을 묻는게 아니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이름 물을 땐 ‘이름이 뭐지?’ 물어야지, ‘누구니?’라는 물음은 그야말로 그가 누구인지를 묻는 거라고. 물음은 간단하지만 그런 경우 대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옳은 말씀. 나더러 누군가가 ‘넌 누구지?’ 묻는다면 단순히 ‘난 보라야’라고 말할 순 없겠지? 그건 그저 내 이름뿐이고, 그 사람이 정작 묻는 건 단순히 내 이름이 아니니까. 내가 ‘누구냐’ 물은 거니까.
내가 누구지? 생년월일, 출생지, 부모님 이름, 주소, 혈액형. 키, 몸무게, 시력, 허리둘레, 학교와 학년 반, 친한 친구, 취미, 특기, 좋아하는 연예인, 십팔번…… 이런 걸 다 말한다고 해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런 걸 기록한 종이 한 장만 보고, 거기 붙은 최근 3개월 이내 찍은 사진 한 장 보고, 아니, 그 사람이 나와 직접 마주친다 해도,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까지 나눈다고 해서, 날 정말 알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은데, 내가 누구라고 나는 또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여전히 날면서 장난기가 발동했던지 “후아유?” 갑자기 내 입에서 영어가 튀어나왔어. 그런데 별단개가 이쪽을 돌아보는 거 같았어. ‘마이네임?’ 이렇게 되묻는 거 같았어. 그렇게 대꾸하며 웃는거 같았어. 그래, 그 개는 분명 웃었어. 그런 표정이었어.
“오노, 후아유?”
내가 다시 큰 소리로 말했지. 그런데 그 때 우리들은 이미 하강하고 있었던 거야. 바닷물이 보였어. 그리고 섬이 보였어. 그 섬은 점점 넓어지다가 주위 언덕과 풀숲과 나무와 산등성이들로 금세 바다를 가렸어. 그리고 어느마을이었어. 거기 어느 집 마당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시청앞 촛불집회 이후 처음이었어. 대개가 섬사람들이었어. 아녀자와 노인들이 많았어. 아이들도 더러 보였어. 도회지 사람도 섞여있었어. 다시 보니 영화촬영팀 같았어. 그리고 그곳은 마을 공회당 마당같았어.

아바지 오구대왕님
오마니 오구마님네
혼인헌지 일삼년 지나토록
태기가 없더니마니
석달열흘 백일정성에
그달부터 태기있어
열달만에 순산허니 딸아기올시더
그 애기 어느새 세 살
백일정성 천만배에
그달부터 태기있어
열달만에 순산허니 웬수야, 악수야
또 딸아기올시더……

와아, 사람들이 웃었다. 모여선 사람들이 허릴 잡고 웃고 있었어. 무당은 신이 오르고, 카메라는 돌아가고, 오구대왕은 이렇게 셋째, 넷째…… 여덟째까지 딸아기를 낳고, 무당은 무당대로 딸아기가 태어 날 때마다 같은 소리에 똑같은 몸짓을 되풀이했지. 때마다 둘러선 사람들이나 장독대, 나뭇가지에 올라선 사람들 모두 똑같이 한숨짓다가 박장대소를 했어.

아랫물에 목욕허구, 윗물에 쌀을 씻어
메를 지어 올리고서 손비비고 절을 허니
그달부터 태기있어 석달만에 입덧이라
머루다래 살구석류 천도복숭아 가져오니라
이번에는 뛰는 모양도 다르고
부른 배 모양 또한 전과 다르다
아홉달에 굽을 돌려 열달만에 순산허니
어이할꼬, 웬수야 대수야 또 딸이 올시더……
깃만 붙은 저고리에 말만 붙은 치마입혀
명주밖에 내버리니
하늘에서 학이 한 쌍 너울너울 내려온다……
북문밖에 바리데기 이래저래 자라는데
오구대왕 오구마님 큰 병을 얻었구나
화태편작 다불러도 백약이 무효로다……
수양산 깊은 골에 석간약수 약이라니
그 누구를 보낼건가
딸 여덟 불러다가 큰딸보구 허는말이
늬가 갈래? 뭇갈시더, 아들 혼삿날 받아놓아
내는 갈 수 없습니더, 둘째보고 허는 말이
늬가 갈래? 못갈시더, 딸 혼삿날 받아 놔서
내도 갈수 없습니더, 셋째야 늬가 가련?
눈 어둔 시부모님 조석으로 모셔야죠
넷째야 늬가 가렴, 시어른 제삿날 가까워
내 또한 못갈시더, 다섯 번째야 늬가 가야겄다
순산달이 낼 모레라 내 또한 못갈시더…….(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