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돈에 눈먼 나라 같습니다. 모든 것은 돈으로 통합니다. 드라마 <쩐의 전쟁>, <황금의 제국>, <돈의 화신>은 우리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계가 자유 시장 경제체제로 재편되고 국가도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마당에 개인들의 돈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의 자본 통제 능력은 이미 작동불가처럼 보이고, 오히려 국가가 자본을 위해 복무하는 기이한 행태가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자본과 국가가 함께 만들어낸 맘몬이 오늘의 시대정신 Zeit-Geist입니다. 개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을 따라가다 맘몬에 사로잡혀 자신의 피와 땀과 영혼을 빼앗긴 채 좀비처럼 변하고 있습니다. 풍요로울수록 더 많이 갖고자 하는 부자병을 일으키는 어플루엔자 Affluenza가 온 세상을 감염시키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우리를 돈의 노예로 만드는 맘몬이 그저 상징만이 아닌 실제 악의 힘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종교도 맘몬에 물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회는 성장주의의 유혹에 빠져 끝 모를 변신을 해왔고 성장을 축복으로 설명하며 맘몬을 우리 사회에 퍼뜨렸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고통이 점점 커지는 것을 봅니다. 국민소득이 오른 만큼 더 편안하고 풍요롭고 행복해야 할 터인데, 사람들은 더 힘들고 부족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부부가 맞벌이하며 더 많이 일해도 여전히 부족할 뿐입니다. 힘이 들면 들수록 우리는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지만, 묘하게도 돈을 벌면 벌수록 늘 모자라고 더 필요하다고 믿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돈은 우리의 행복과 별로 연관이 없다는 것을. 돈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믿음은 맘몬이 가져다주는 거짓 믿음입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영적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먼저 정지 stop하는 일입니다. 제자리에 멈춰서야합니다. 멈춰 서면 보이고 깨닫게 됩니다. 정신없이 달리는 자신의 모습도, 거친 호흡도, 바닥난 자신의 에너지도, 삶의 기쁨도, 존재의 이유나 의미도, 자기 영혼의 지친 모습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리에 앉아 숨결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고, 목표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피어있는 풀과 꽃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쉴 수 있는 삶의 오아시스가 나의 일상에 숨어있었다는 것을! 매일 매일 그 작은 오아시스에서 기쁨과 평화의 샘물을 마실 수 있다면 돈은 점점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천천히 걷는 속도로 사는 일입니다. 달리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더 좁아집니다. 나중에는 옆은 보지 못하고 앞만 보도록 만든 눈가리개를 쓴 경주마처럼 우리는 앞만 보게 됩니다. 시속 4km, 걷는 속도입니다. 그렇게 천천히 산다면 사방천지를 구경할 수 있고, 옆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고, 나를 둘러 싼 모든 것들을 느끼며 살 수 있습니다. 달리지 마세요, 천천히 걸어보세요. 영성가들처럼 느림의 미학을 발견한다면, 그 순간만으로도 너무 충분한 기쁨과 행복이 거기 있습니다. 그리고 개혁과 변화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변하면 세계가 변합니다. 세계를 생각하면 변화와 개혁은 요원해보이고 힘들어 보이지만, 나 자신을 생각하면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부터 일상에서 깨어나기. 나부터 매일의 신비를 발견하기.

세 번째는 오늘을 사는 일입니다. 김영운 목사가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다그 함마르셸드 Dag Hammarskjold의 말을 인용해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Ea- ch day a New day, Each day a Life.” 우리는 매일 오늘 하루를 삽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산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고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의 첫 날입니다. 삶을 순환하는 원으로 보아도 오늘은 알파와 오메가가 만나는 완성의 날이요, 성서가 말한 ‘그 날’입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의 삶은 전혀 새롭고 다른 날입니다. 이 하루치의 삶을 알파와 오메가가 만나는 구원의 날로 살아내는 것이 영성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하루치의 양식’을 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일 년, 이년, 혹은 그 이상의 양식을 구하지 않고 하루치의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생명이 인간이 모아들인 양식이나 재물, 혹은 저축이나 계획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루치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주님으로 섬기는 굳건한 믿음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