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목전에 두고 마음 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습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한 젊은이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의 격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미세먼지처럼 음울한 기운이 사람들의 영혼을 옥죄고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인 것은 이제 관심거리도 아닙니다. 최근에는 ‘사회적 타살’을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개인 탓이 아닌 사회적 억압과 절망이 개개인을 자살로 밀어 넣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앞서 분신한 젊은이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음울한 기운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급속한 생활환경의 변화가 주된 요인이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우리를 억압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에는 믿음으로 산 선조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로 산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자기 생전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질 것을 믿고 산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내일을 멀리 보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치열하게 살면서도, 그들의 삶의 목표는 눈앞의 부귀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귀소본능을 지닌 연어처럼 돌아갈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로 살았던 거지요. 그들이 극심한 박해와 생활고에서도 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같은 믿음의 열정을 지니고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내일’은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멀리서’ 보는 내일은 없습니다. 후대에나 이뤄질 내일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눈앞의 내일만 있을 뿐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조급합니다. 사는 게 힘이 듭니다. 당장 얻을 이익에만 매달립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세속의 것들은 그 어느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바다에서 파도가 그치지 않듯이, 세속의 가치들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세속은 원하는 것들을 환상과 이미지로 유혹합니다. 유혹들은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습니다. 불안도 과장되어서 지레 겁을 먹게 합니다. 이제 초등학교 자녀에게 고등학교 과목을 선행학습 시키는 부모들의 마음이 그럴 것입니다. 그들은 이게 아니지, 하면서도 남들이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불안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내일을 시간단위, 초단위로 분절합니다. 길어도 1년, 2년, 혹은 3년입니다. 정부는 임기 내에 성과를 내겠다며 결기를 다집니다. 이럴 경우 권력은 국민을 압박하다 못해 내부의 적을 만들어 공격합니다. 기업은 되도록 짧은 기간 내에 수익을 내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근로자들을 채근합니다. 주식하는 사람들은 아예 초단위로 변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경제개발 5개년’ 단위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과도한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오늘날은 사실상 멀리 보는 ‘내일’은 없습니다. 초단위, 시간단위의 내일만 있습니다. 우리의 꿈이, 우리의 희망이 찰나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없습니다. 오로지 이익만 있고, 성과만 있습니다. 경영자는 주주의 배당을 늘리기 위해 노동자를 물건취급 합니다. 돈과 권력의 하수인이 된 공권력은 알아서 노동자를 패대기칩니다. 대통령은 4만불 시대를 열겠다고 합니다. 4만불 시대를 ‘바라는’ 것이라면 그리 염려할 게 없지요. 4만불 시대를 ‘만들겠다’는 데 소름이 돋습니다.

성경은 내일을 100년, 천년을 단위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훨씬 더 먼 미래를 내다보게 합니다. 천년왕국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천년을 ‘내다보는’ 왕국입니다. 예언자들이 그 시대와 충돌했던 것은, 바로 내일을 바라보는 시각차 때문이기도 합니다. 눈앞의 성과에 매달리느라 불의와 압제를 일삼은 왕들과, 먼 내일을 내다보는 예언자의 눈이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어떻습니까. 내로라하는 이들의 행동거지를 보면 눈앞의 내일은 있어도, 멀리 보는 내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지녔던 멀리 보는 믿음은 없고, 성공을 드러내고 싶은 조급한 믿음만 있는 것이지요. 자살이든 사회적 타살이든 날로 증가하는 이 음울한 기운을 조금이나마 걷어내려면, 짧은 내일로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