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쯤, 출근(내가 개인 작업실에 나가는 시간은 좀 늦은 편이다)길에 아파트 정문에 이르면 이미 노란색 버스가 한 두 대쯤 기다리고 있고,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갈 어린이를 대동한 엄마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엄마들은 구면이어서 서로 인사도 하고, 그 사이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 교사들은 자기네 원생들을 버스에 태우고 문을 닫는다. 엄마와 어린이들이 잠시 헤어질 시간이다.

엄마들이 손을 흔들고 버스에 오른 어린이들도 손을 흔든다. 창가에 앉은 한 어린이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모양을 만들어 보인다. 물론 엄마 또한 여기 답하게 마련이다. 여느 곳에서도 흔히 보는 풍경이다. 일단 아이들을 맡긴 엄마들은 홀가분한 마음에 한껏 자유로운 모습으로 손바닥을 털며 지난 하루 사이 있었던 이야기도 나누고 알음알음에 따라서는 ‘우리 집에 가 커피나 한 잔!’ 하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들 아이 엄마의 부모님들은 일찍이 아들 딸 출가시키고 대부분 두 부부가 살 것이다. 이들에게도 물론 부모가 있고, 연로하신 친정 부모님 가운데 한 분만 남은 경우는 대개 실버타운이나 요양병원에 가 계신 게 보통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부모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분이 생존해 계실 때는 서로 의지해 함께 사시므로 별문제지만, 어느 쪽이든 한 쪽이 홀로 남게 되면 일단 자식 집으로 오시는 게 상례이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일어난다. 우선 누가 맡을 것인가? 그리고 누군가 자청해서든, 억지로든 (무슨 물건도 아닌데) 맡게 됐을 때, 그래서 지금까지 ‘없던 사람’이 한 방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을 모셔야 할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물론 다시 강조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 금이 더 벌어지기 전에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게 실버타운이나 요양병원이다.

부모님을, 혹은 그중 한 분을 실버타운이나 요양병원에 보낸 아들딸은 때때로 전화를 건다.
실버타운이나 요양병원에 시어머니나 장모님을 보낸 며느리나 사위도 때때로 전화를 건다.
“어머님(혹은 아버님), 사랑합니다.”
“아버님(혹은 장모님), 사랑합니다.
이런 광경을 상상하면서 엉뚱하게 (아니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다. 나는 최근 시 한 편을 썼다(사실은 오래도록 생각해온 내용이다).

그 나라에서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까고
아기를 집에서 낳았대요.

그 나라에서는
목화를 심어 옷감을 얻고
손수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지어 입었대요.
누에를 키워 비단도 얻었대요.

그 나라에서는
소금물에 볍씨를 불려 못자리를 만들고
절구질을 해서 밥을 짓고, 떡도
해 먹었대요, 무 배추 심어 김장도 하고
고추장 된장도 담가 먹었대요.

그 나라에서는
양지 바른 곳에 집터 닦아 소나무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새 집지어 아들 며느리 살게 했대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집에서
몇 백 년씩 살았대요, 그 집에서 손자 손녀가 태어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그 나라에서는
어린이가 나무를 자르고 망치로 못을 박아
썰매를 만들고 팽이도 깎았대요, 누나는 밤새워 짠 털목도리
동생 목에 감아주고, 골목에서 어른 만나면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하고, 동무들과 어울려 하루 종일
아무 걱정 없이 놀았대요.

그 나라 사람들은
서로 돕고 나누며 살며
나무 그늘이나 등잔불 밑에 모여
정겨운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대요.
아니,
사랑한다는 말을 아예 할 줄 몰랐대요.

최근 가톨릭 쪽의 어린이 잡지에 보낸 동시 ‘이상한 나라’ 전문이다.


병아리는 부화기로 깨고 아기는 병원에서 태어난다. 누가 지었는지 모를 유행 타는 기성복을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구매하고,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재배했는지 모를 식재료를 시장을 통해 공급받는다. 건설회사에서 다량으로 지은 같은 모양의 집을 매입하거나 빌려 살다가 휴가철이 되면 이곳저곳 레저시설로 휴식을 취하러 간다. 아이들도 장난감을 자기가 만들지 못하고 시장에서 구입한다.

과정이 없어진 것이다. 열매만 취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이야기도 사라졌다. 이야기 있는 곳에 사랑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굳이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충분히 사랑하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