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사람입니다. 신앙공동체인 교회도 건물이 아닌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인가?/ What is the Church?’가 아니라 ‘교회는 누구인가?/ Who is the Church?’라고 물어야 한다는 한스 웨버 Hans R. Weber 지적은 옳다는 생각입니다. 무지개 마을 만들기도, 시작은 땅, 건축, 행정절차, 이런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일까요? 아니, 누구이어야 할까요? 함석헌이 노래했던 ‘그 사람’일까요?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 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이 말하는 ‘그 사람’은 믿음직하고 나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사람으로 공동체인의 자격을 가질 만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 믿음직한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라면, 함께 이웃으로 살아도 얼마나 듬직하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주인공은 따로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함석헌이 그리고 있는 ‘그 사람’보다도 함석헌이 묻고 있는 대상자인 ‘그대’가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그 사람’보다도 옆에 있는 이웃을 ‘그 사람’처럼 볼 수 있는 눈과 믿음을 갖고 있는 ‘그대’가 진정 공동체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형제만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공동체는 ‘너’가 아니라 ‘나’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초는 지금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을 탓하거나 반대로 비위를 맞추거나, 남과의 관계에서 나의 태도를 만들어가는 페르소나 Persona로서는 공동체를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페르소나라는 에고들의 허구에서 벗어나 ‘참 나’를 찾을 때 비로소 공동체는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방탄소년단 BTS이 ‘Love yourself, Speak yourself’를 말하며 팬 그룹인 아미 Army들과 만들어가는 ‘선한 관계 운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나에서 출발하여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맞추려고 거짓으로 살아왔던, 그래서 경쟁, 거짓, 분노, 열등감, 두려움 등의 감옥에 갇혀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참된 나 자신의 삶을 살려고 자유의 여행을 떠날 때 비로소 공동체의 삶은 시작됩니다. 공동체의 삶은 구속이 아닌 자유입니다. 타인으로부터의 자유, 내가 만든 편견과 허상으로부터의 자유, 그래서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자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와 인연 지어진 모든 만남을 내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기쁨에의 자유가 공동체의 기초입니다. ‘그대’는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