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목전에 있습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찬사와 함께 ‘독재자의 딸’이라는 멍에도 피할 수 없는 대통령입니다. 언론들은 서둘러 5060세대의 안정에 대한 욕구와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기대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려의 저변에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온 경력과 통치 유산의 그림자가 숙명처럼 따라붙고 있습니다. ‘잘 살아보세!’로 표출된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는 자랑스러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가주의라는 음울한 그늘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 부강한 나라에 대한 바람이 잘못됐다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총화’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주의는 그 자체가 폭력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주의에서 국민은 주인이 아닌 시혜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도전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일 수 있고, 죽은 자이나 산 자일 수 있습니다. 살고자 열심이나 죽음을 향해 돌진할 수 있고, 죽은 자처럼 살지만 실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탄식하며 회개를 요청할 때는 그들이 죽은 자여서가 아니라 너무나 열정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 없는 열정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이사야의 경우, 예루살렘의 심판을 말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하겠다고 하신 이유가 저들이 무기력하거나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했습니다.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사 2:7)했습니다.

그런데 왜 심판하신다는 것인가? 신명기에 의하면 장차 왕들은 말을 얻으려 백성을 이집트에 보내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신 17:16). 말을 사기 위해 백성을 이방 나라에 노예로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당시 예루살렘 지도층이 그랬습니다. 당시 말은 전쟁물자입니다.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필수 무력이었던 셈이지요. 저들은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며 더 잘살려는 욕망으로 값비싼 말을 사기 위해 가난한 백성을 이집트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권력 유지에 혈안이 되어 이방 나라들과 무분별하게, 때로는 비열하게 동맹 맺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주의는 권력의 무한 팽창과 함께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약자에 대한 수탈이 일상화됩니다. 특권층의 비호를 안보 논리로 가림막칩니다. 고문과 학살이 자행됩니다. 적에 대한 적개심을 통치 에너지로 삼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이 재벌공화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인 애국이 아닌 국가주의에 의한 애국은 대다수 국민을 고통으로 몰고 갑니다. 그 시대, 교회까지도 국가주의가 열창하는 애국을 신앙의 열정으로 포장했습니다. 이사야 당시 예루살렘 지도층은 평화의 길을 거부하고 국가주의에 편승하여 무력에만 혈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언자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사 2:5) 라고 합니다. ‘야곱 족속’은 한해살이 풀인 사막의 스네처럼 연약한 자들에 대한 은유입니다. 몸 붙여 살 땅이 없어 유리방황하던 유랑민이요,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노예로 전락한 자들입니다. 저들이 극심한 고통으로 탄식할 때 하나님께서 해방의 은총을 베푸시고, 다시는 종의 세계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토 확장에 목숨 걸거나, 무력을 의지하거나, 물질만을 의지하거나, 약한 자를 착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그걸 일깨운 것입니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으로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생활보호대상자나 영세 상인들은 껴안으면서 자본과 권력에 치어 억울한 사람들은 외면한다면 여전히 국민을 시혜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국가 안보 핑계로 평화의 길을 버리지 말라고. 잘 살겠다는 열망으로 정의가 짓밟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살 길이 없는 게 아닙니다. 나만 살겠다는 열정은 함께 사는 열정이 되어야 합니다. 국가주의의 덫에 걸려들지 말고, 이 땅에 사는 ‘야곱의 족속’ 즉 약한 자들이 행복하게 사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애국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