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감정이 창자를 뒤틀고 올라오는 가운데, 새해를 생각하며 글을 쓰려니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정리해보지만 영혼의 울림은 없고, 울적한 기운만 가슴을 조여 댑니다. 그만 둬야겠다, 하면서도 이게 지금의 내 심정이라면 굳이 감출 것 없이 토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 자위해봅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는 햇순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거친 말을 쏟아내는 저를 너그럽게 봐주십사고.

제가 28년 동안 섬겨온 삼일교회는 규모는 작지만, 지난 40여 년 동안 알뜰하게 가꿔온 교회입니다. 주일마다 형제자매들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공손하게 예배하고 사랑을 나누는 처마 끝에 자리 잡은 둥지 같은 교회입니다. 7년 전에는 낡은 건물이 붕괴되어 정성을 다해 새 건물을 지었습니다. 정원에는 꽃과 나무를 심었더니 어느 사이 동네 텃새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교회가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은 재개발 광풍이 불면서부터 입니 다. 우여곡절 끝에 주택재개발조합으로부터 대토 부지를 약속받고 이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끔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택재개발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삼일교회 교우들의 마음의 성소를 사정없이 짓밟은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18일의 일입니다.

그렇게 일개 기업에 의해 마음의 성소를 빼앗긴 삼일교회 교우들은 거리에서 예배드리는 처지가 됐습니다. 가관인 것은, 삼일교회를 짓이긴 당사자 가운데 하나이거나 방조자인 은평구청은 지난해 12월 1일(화) 오후 구청 마당에 성탄트리 점등식을 한다며, 관내 목사님들을 모시고 예배도 드리고, 그럴듯한 만찬도 대접했다고 합니다. 목사님들은 ‘불철주야 구정을 살피느라 애 쓰신다’며 구청장과 구청 직원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겠지요. ‘참 좋기도 하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심통만은 아닐 것입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탐욕의 꼬락서니를 보면, 세상이 금방 망하지 않는 게 이상한데, 지난 연말 바다 건너에서 들려온 소식은 세상이 망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지 싶습니다.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가 딸을 낳고 자신이 가진 페이스북 지분 99% (시가 450억 달러/약 52조원)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는 소식입니다. 물론 다른 꼼수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미국의 일부 세계적인 부자들이 앞장서 통 큰 기부를 하고,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갓 태어난 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에는 딸에 대한 사랑과 함께 이들 부부의 미래 세계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며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기부의 이유에 대해서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모든 아이들에게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피붙이를 뛰어넘는 인간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글로벌기업이라는 삼성물산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니다.

삼성물산에 우리 삼일교회는 규모로 치면, 파리 콧등에 앉은 먼지보다 더 작을 터인데도, 주택재개발조합이 우리교회에 주겠다는 산꼭대기 대토부지마저 주지 못하게 훼방 놓고, 성소를 무참하게 파괴하고, 엄동설한이 닥치는 때에 목회자인 저와 교인들을 길거리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삼성레미안 북한산 베라힐즈]라는 딴엔 고급스런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다며 동네방네 소문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양 아흔아홉 마리 가진 자가 제집에 온 손님 대접한다며 이웃의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한 마리 양을 빼앗은 것 이상으로 치졸합니다. 이 일로 분개하는 것은, 공권력도 아닌 일개 기업이 쥐꼬리만 한 자사 이익을 위해 용역을 동원하여 문명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성소를 침탈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탐욕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삼성물산과 같은 거대 기업이 정말 그래도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런 옹졸한 기업도 가련하지만, 저커버그 부부와 같은 기업인을 가지지 못한 대한민국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미국이 연일 벌어지는 인종차별과 총기 난사 사고에도 그리 쉽게 망하지 않는 이유가 그런 게 아닐지(?) 어쨌거나 우리에게도 그렇게 망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