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성서연구


	04/2007	목차 (2007년 04월호, 제134호) :햇순:을 읽고.. 편지로 띄우는 말씀 / 공동체성서연구자료 / 성서난해구 해설 / 공동체만들기 오늘을 바라보며 / 말씀과 삶의 뜨락 / 현장의 소리 / 강정규 연재동화 영성생활에 도움되는 책 / 에니어그램영성 / 공동체소식 / 공동체 이야기

강정규 연재동화

새 가 날 아 든 다. (3)

강 정 규

동화작가,
"시와 동화" 발행인,
단국대 초빙교수.

평안한 봄날 오후

이번엔 마늘종 두어 줄기 뽑아다 고추장 찍어 소주 한잔 더 마셨다. 대청마루에 큰 대자로 누웠다 일어나 화투짝도 떼어본다. 한나절도 못 됐는데 웬일인지 적적하고, 하루 겨우 지났는데 봄날 해가 무지 길다. 황사인지 송홧가룬지 며칠 동안 날리더니 날은 다시 청명하고, 먼 산에 뻐꾸기 우는데 느닷없이 건넛마을 아파트촌 사는 동창생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전화 왔다. 호상이니 심심하던 차 차라리 잘됐다고, 옷 갈아입고 나서는데 이건 또 무슨 전환지 따르릉, 벨 울린다.

“여보슈. 뉘슈?”
“할아버지!”
“오냐, 종수로구나.”
“할아버지!”
“왜야.”
“할머니 좀 바꿔주세요.”
“할미 고모네 갔다.”
“고모네?”
“그랴, 애기 받으러 갔지.”
“그럼, 할아버지!”
“오냐, 어서 말해보렴.”
“저…… 감자는 언제 캐나요?”
“감자? 감잔 웬 감자냐?”
“감자밭에 감자요.”
“이 녀석아, 그 감잔 엊그제 심었는걸?”
“그럼, 멀었나요?”
“그러니께 하지감자라 하지 않더냐? 하진께 여름이지. 그런데 왜 그러느냐?”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엥?” 전화가 뚝 끊긴다. 갑자기 감자는? 실없는 녀석 같으니라구. 할아버지 다시 나와 방문 닫고 마루 끝에 엎어놓은 흰 고무신 꿰신으며, 감자? 옳거니, 감자밭에 꿩알이로다. 허허허 혼자 웃으며 팔자걸음 옮겨놓는데 다시 따르릉, 전화벨 또 울린다.
“뉘슈?”
“영감유?”
“그려, 임자. 워떻게 된겨?”
“당신 방금 외할아버지 되셨수다.”
“허허, 그녁은 외할미 되구?”
“잘 기슈. 지삿날 대서 갈 거구만유.”
“잘됐네. 집 좀 비워야 할 텐디, 나 읎을 때 전화 올깨비 맘 걸렸는디…….”
“어디 시방 마실 가슈?”
“그럴 일 생겼응게, 전화 끊어!”
벌어진 입 못 다물고 팔자걸음 떼놓는데, 성황당 지나면 황새밭, 황새밭 머리엔 조상님 무덤들이로다.

꿩

지난해 여름 일이다. 할아버지는 아들네를 불렀다. 장마 오기 전 감자 캐는데 자손들 불러 일손 덜고 무엇보다 맨날 학원 다닌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맏손주, 종수 녀석이 보고 싶었던 거다.
논밭은 대부분 고속도로 뚫리는 데 들어가고 아들은 그 보상비 받아 좋다꾸나 대처로 나가고 텃밭 외에 땅이라고 남은 것이 산비탈에 있는 황새밭 한자락뿐이었다. 이름뿐이지 언제부턴가 황새는 오지 않고 거기에 해마다 감자를 좀 심는데, 아들네 부르면 차가 있으니 옮기는 데도 수월하다. 그런데 막상 아들놈 출장중이고 느지막이 나타난 것은 며느리와 손주 녀석이었다.
그사이 할멈과 할아버지는 두세 고랑을 캐놓았다. 차가 오지 못했으니 이미 캐놓은 감자도 져 나르자면 여러 짐이요, 리어카로 나르려면 고속도로 밑으로 뚫어놓은 통로 지나는데도 저만치 도는 길이 수월찮은 거리다.
할멈은 그저 손주가 반가워 선산 아래 왕솔나무 그늘에서 어쩔 줄 몰라 웃고 떠들고, 며느리만 밭고랑에 널린 감자알 한군데로 모아놓으며 늦은 것을 송구스러워하는데 할아버지는 캐던 두렁이나 마저 캐겠다고 부지런히 호미질을 해나가다가
“어이쿠나, 이게 뭣이냐!”
깜짝 놀라 소리친다. 무성한 감자 포기 사이에 지푸라기며 마른 풀잎, 잔디뿌리를 물어다 꾸민 둥지 놓여 있고, 알록달록한 새알이 여남은 개 들어 있었다.
“뭐예요, 할아버지?”
처음엔 흙 속에서 감자알이 줄줄이 딸려나오는 게 신기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종내는 덥다면서 나무 그늘로 물러앉아 할멈과 노닥거리며 음료수병만 기울이던 종수가 이쪽을 건너다보며 다시
“또 까마중 있어요?”
“그게 아니고……”
“아버님, 뭐예요?”
며느리가 우선 오고
“할아버지, 뱀?”
종수도 일어선다. 그 때 솔숲 쪽에서 꿩이 꿩꿩 우는구나.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이게 뭣이냐. 새알은 분명헌디…… 아마 꿩알인 모냥이다.”
“꿩!”
종수 놈 두 눈 똥그래져 달려오다 모아놓은 감자 무더기 잘못 밟고 미끄러져 주저앉고
“어허이, 좀 천천히. 서둘지 말고!”
며느리가 한마디 주의 주고
“꿩알? 할아버지, 어디어디!”
종수 다시 달려오고
“이 봐라. 나뭇가지 마른풀 풀뿌리랑 물어다가 이렇게 둥지 틀고 감자 포기 속에 숨어 알을 낳아 품었구나.”
“세상에!”
며느리 감탄하고
“알을 품어요?”
종수 눈빛 반짝인다.
“그려. 에미가 알을 낳아 오랫동안 품어주면 새끼가 나온단다.”
할아버지 둥지 안을 들여다보며 대꾸하고
“꿩이란 놈 하필이면 감자밭에 알을 낳누.”
어느새 할멈도 다가와 혼잣말을 한다.
“어미는 어디 갔지?”
“글쎄다. 알을 품다 사람들 오니 도망쳤겠지. 아마 저 솔밭 덤불 속 어디 숨어 어쩌나 걱정하믄서 보고 있을 게다.”
할아버지 산소 뒤쪽 잔솔밭을 바라보고 종수도 그쪽을 보는데
“얼마나 불안에 떨까.”
며느리가 둥지 속 들여다보다가 할아버지 눈길 따라 솔숲 쪽을 둘러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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