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08

 

 

 

 

 

 

 

 

 

 

 

 

  강정규 연재동화

 

낮 달 (8)

 

 

 

 

 

 

 

 

 

 

 


강 정 규

동화작가,
"시와 동화" 발행인,
한국아동문인협회장,
단국대 초빙교수.






 


고모가 죽었다.
의용군으로 뽑혀간 대학생 애인의 전사통지가 온 후, 저수지 둑에서 고모 신발이 발견됐다고 했다. 나는 앓아누웠다. 아무것도 먹질 못하고 계속해 코피를 쏟았다. 코로 쏟다가 입으로 쏟다 못해 삼켜서 똥까지 시커멓다. 할머니가 오시고, 무당을 불러다 굿을 했다. 고모 넋을 건지는 굿에 이어지는 굿이었다. 할머니가 쓰러질 지경이었다. 순전히 나를 살려내려는 악으로 견뎌내고 계셨다. 잡귀가 붙었다고 했다. 그 굿판에 엉뚱하게 순덕어머니가 뛰어 들었다. 비녀는 어디다 빠쳤는지, 낭자는 풀어 산발인 채 순덕아, 순덕아 소릴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베적삼은 앞섶이 벌어지고 해진 검정고무신은 겨우 엄지발가락에 코만 걸친 채 무슨 헛것이라도 보이는지 양팔을 치켜들고 손목은 연신 물에 빠진 이 허우적대듯 까불어대며 다급하게, 찢어진 무명치마자락 바람처럼 휘날렸다.
“순덕아!”
“순덕아!”
마른 개흙 먼지만 풀풀 날리는 갯둑을 쏜살같이 오르내리며 소릴 질렀다.
“순덕아!”
“순덕아으!”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찢어지는 소리로, 날 선 소리로, 때로는 젖은 목소리, 때로는 마른 목소리,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는지, 밤이 가는지 낮이 가는지 나는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무슨 일이 터지고 잦아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지지배가 즈이 아부지 대신 간겨. 왜 쌩뚱맞게 갈밭에 가서 죽냐구! 거기 뭐가 있다구 거길갔다 총맞어 자빠졌어 글쎄, 순덕아!”
내 귀엔 순덕이 어미 목소리가 순덕이 목소리로 들렸다.
“여기는 내 땅여, 이건 내 능금나무란 말여. 나는 결단코 우리 아버지처럼 살진 않는단 말여.”
나는 잠시 정신을 얻었다가 다시 정신을 놓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순덕이는, 무엇인가 먹을 것을 얻으러 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째 돌아오지 않았고 그 사이 쌕쌕이 공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공습 훈련이 있었나 보다. 그 무렵 우리집 대장간 화덕엔 다시 불이 지펴지고 모루를 두들기는 아버지의 망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순덕이는 어쩌면 쇠붙이를 주우러 사격장 언저리를 배회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에 갖다주려고 말이다. 대장간에서는 쇠붙이가 필요했으니까.
순덕이는 조개섬에 누운채 숨져있었다고 했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얼굴빛은 백지장 같고 순덕이를 죽인 미제 기관총알은 겨우 그 애의 가느다란 허벅지를 뚫고는 제 할 일 다했다는 듯 광목 치맛자락 밑에 옆으로 누워있더라고 했다. 그 옆에는 뒤틀린 철판 조각과 포탄조각이 하나 놓여있었는데 그 중 한 개에는 U.S.A 세 글자가 선명히 찍혀있더라고 했다.

국기게양대에 깃발이 두세번 바뀌어 걸리더니 마을은 겨우 평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정례아버지는 무사히 돌아와서 의용소방대장 모자를 쓰고 전쟁 전보다 좀 들어가긴 했지만 아직도 깍찌동만한 허리에 두껍고 폭넓은 가죽허리띠를 띠고 뒤뚱거리며 출근을 하더란다. 방앗간 기계도 다시 돌아가며 보리방아를 찧기 시작했지만 기관수는 이제 개똥모자가 아니었다. 그는 북으로 인민위원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디 숨어있다가 다리밑 간살대에 목을 매고 죽었다고 했다. 그 곳은 여름철 삼복더위에 개를 패잡아 짚불을 놓고 그슬리던 장소였다.
정례는 서울로 전학을 보낸다고 했다. 말은 낳아서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그래서 그런다고 했단다. 순덕이 아버지는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어나기만 하면 정례네 물을 다시 길어 댈 것이라고 했단다.
순덕이가 자기 아버지 물통을 저만치 져다 놓고 다시 자기 물초롱을 또 저만치 져다놓는 사이, 순덕아버지는 빈 물지게를 등에 걸친채 길가에 쪼그려앉아 기침을 해대면서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눈앞에 어렸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혀두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어야한댜.”
“누가 그랴?”
내가 물었다.
“위인전에 그렇게 써 있어.”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나는 바람부는 나무다리 위에 서 있다. 순덕이 노래가 다시 들려온다. 나는 보았다. 첫날밤 신랑신부가 함께 벤다는 긴 베개처럼 홑이불에 둘둘 말린 순덕이가 지게 위에 가로 놓여 산으로 간다. 하늘 저만치 순덕이가 늘 머릴 빗던 얼레빗 모양의 무심한 낮달이 허공중에 걸려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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