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5/2008

 

 

 

 

 

 

 

 

 

 

 

 

  현장의 소리

 

선진화의 망령

 

  말씀과 세상(7)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가 펼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왜 위로해야 하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 40:6-8).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시드는 풀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즐겨 사용하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딸린 업적이라는 것도 잠시 피었다 지는 꽃과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이사야가 희망을 설교하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의도를 짐작해봄직도 합니다. 진정한 희망은 아침 안개와 같은 인간의 능력에 있지 않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지요.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히11:3). 설교자에게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설교자의 믿음론을 따라가다 보면 창조주 하나님만이 아닌 구속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히브리서 설교자의 믿음론은 창조론과 구속론이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희망이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구속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양날개에 의해 성취되는 것임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창조주이기만 하다면 다윈의 진화론과 맞장구를 치는 것 외에 달리 기대할 게 없을 것입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은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낙엽처럼 지는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소위 성육신 사상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되신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을 보다니. 우리는 이 요한에게서 창조론적인 세계관을 뛰어 넘어 연약한 존재를 품어 안으시는 하나님의 구속 행위와 만나게 됩니다.

창조신 개념은 고대 근동의 여러 신들 가운데서도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모두가 적자생존이라는 자기 존재의 한계를 지닌 신들입니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신들은 번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신들은 도태됩니다. 이 신들에게 귀속된 인간 역시 같은 운명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다윈의 진화론은 신들의 창조론과 대립하는 것 같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무조건 살아남는 것, 적응하는 것, 성장하는 것, 이익을 남기는 것만이 번영하는 길입니다. 놀랍게도 이런 창조신들에 의한 세계 인식은 뒤틀린 역사에 대한 자성이 없습니다. 약한 자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억울한 자의 탄식 따위는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도태된 것들이니까. 희망의 설교자가 창조주 하나님만을 말하지 않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을 동시에 말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이기도 하지만, 죄악의 역사를 속량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생존경쟁에서 낙오되거나 실패한 이들, 강자의 억압과 폭력에 짓밟힌 이들, 세계화의 무대에서 밀려난 이들을 동료 인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창조론이 아니라 구속론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언젠가는 지는 낙엽과 같은 존재인 것을 감안하면 하나님의 구속 행위야말로 모든 인간을 향한 복음입니다.

개발은 곧 발전이고 창조라는 사고에 젖어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고대 근동의 창조신들과 다를 바 없는 역사관을 지닌 이들, 뒤틀린 역사를 재생산하고, 동료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일상화시키면서도 자기 이름자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어 안달인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까지 나서서 이런 사람들의 발전론에 머리를 주억거리는 모습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연약한 자를 품어주시는 구속의 하나님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삼은 파라오와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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