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08

 

 

 

 

 

 

 

 

 

 

 

 

  오늘을 바라보며

 

사람을 해방시키는 야유와 광대놀이

 

 

 

 

 

 

 

 

 

 

 





김 명 현


전 여신협공동대표
yjmin@bskorea.or.kr






 


지난겨울 방학 동안에 5학년짜리 우리 손자가 두 달 동안 미국 이모할머니에게 다녀왔다. 두 달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아마 어미가 꽤나 극진히 관심을 쏟았던 것 같다. 밥상에 구어 올린 생선, 가시도 발라주고, 말도 다정하게 하고, 야단칠 일이 있어도 꾹 참고 그랬나보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2학년짜리 우리 손녀가 제 엄마에게 빈정대면서, "오빠 돌아오니까 천사 나타나시고~ ~" 하더란다. 보통 때 같으면 제 어미가 자기보다 제 오빠에게 더 관심가지고 더 잘 해 주면 심통이 나서 짜증도 내고 울기까지 하는 애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제 혼자 독차지해야 비로소 정서가 안정되는 아이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아이, 자기가 제일 예쁘다고 믿는 아이, 가끔 그것을 제 할아버지에게 확인하려고 전화를 거는 아이, 그런 아이가, 오빠가 돌아 온 다음에 완전히 찬밥신세가 된 처지에, 옛날처럼 토라지거나 짜증을 내거나 심술을 부리거나 울거나 떼를 쓰거나 할 법도 한데, 아주 여유도 만만하게 이런 아량까지 보이며 제 어미를 놀려대더란다.

제 오라비보다 세 살 아래인 손녀가 그런 재치 있는 말로 제 엄마의 행동에 야유를 보내며 빈정거린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달래고 자위할 만큼 여유가 생기고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보호할 삶의 슬기를 터득했다는 증거다. 손녀의 그런 야유가 밉지 않다. 오히려 그 재치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우리의 각박한 정치 현실에서도 이 어린 아이의 유머와 재치 같은 것이 있다면 남북간의 갈등도, 여야간의 대립도, 집단이기심도 완화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를 화나게 하는 말을 하지 말고, 상대를 요절복통하게 하면서,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재치를 보여주면, 사회가 황폐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옛날에 내가 두 아들을 키울 때 생각이 난다. 언젠가 우리 부부는 어린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얘들아, 성경에 보면, 사랑하는 자녀에게 매를 들라는 말도 있고, 우리나라 속담에도 매끝에 효자난다는 말이 있는데, 너희들 매 맞고 효자 될래, 매 안 맞고 효자 될래?" 하고 물었다. 두 사내놈들이 다 매 안 맞고 효자 되겠단다. 그러면 매 안 들도록 우리 서로 잘 하자고 다짐했다.

우리 큰아들이 지금 우리 손자처럼 초등학교 5학년인지 6학년 때, 우리 부부가 해외여행을 가면서 큰아들에게 무슨 부탁인가를 했고, 자기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서, 여행에서 돌아 와 보니까 큰아이가 제 엄마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너무나 화가 나서 막 야단을 치고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그 때 마침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내가 전에 없이 아이에게 화내며 야단치는 모습을 보고 그는 몹시 놀란 눈치였다. 그러더니, 남편은 "당신 왜 이래! 집안에 왜 이렇게 큰 소리가 나, 당신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당신 괜찮아? 이거 보여? 이거 몇 개지?" 하면서 자기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V자로 펴 보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왼손바닥으로 감싸고, V자를 내 눈앞에 바싹 가져다 대고 빙빙 돌리면서 자기 손가락이 몇 개로 보이느냐고 묻는다. 가뜩이나 애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남편이 내 편을 들어 주어 아이를 함께 야단치기는커녕 나를 정신병자 취급을 하니, 너무 신경질이 나서, "다섯 개!"라고 소리쳤다. "다섯 개!"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남편은, 아이를 끌어안고, "아들아, 너의 엄마 너무너무 용하다. 아빠가 이 세 손가락은 요렇게 감추고, 두 손가락만 보여줬는데, 세 개 감춘 것까지 어떻게 다 알고, 글쎄, 다섯 개라고 이렇게 잘도 알아맞히냐!"

그 소리를 듣던 나도 더는 화를 낼 수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쀼루퉁 화가 나있던 아이도 비시시 웃는다. 능청맞은 남편 때문에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게 아닌가! 그 후 남편은 아이를 따로 데리고 가서 조용히 타이르는 눈치였다. 아이도 제 엄마에게 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정말, 불난 집에 기름 끼얹지 말 일이다. 화해시킨다고 질펀한 잔소리나 설교를 늘어놓아 쌍방의 증오심을 더 키워놓지 말 일이다. 차라리 이런 시시한 광대놀이가 심각한 설교보다 화해를 위해서는 더 효과적일 것 같다. 이런 광대놀이가 사람을 해방시키고 자유하게 하다니…. 광대도 진리와 통하는 데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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