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골로 이사 온 지 석달이 된다. 지인들의 걱정과는 달리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이곳 생활에 비교적 쉽게 적응했다. 내가 외롭다는 생각없이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한 이유 중 하나는 같이 사는 이웃들이 나를 타지인이 아닌, 이곳 사람으로 기꺼이 받아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시골로 내려와서 가장 관심있게 살펴보는 것은 이곳 농촌 여성의 삶이다. 거의 대부분 나보다 연장자여서 맏언니뻘이나 어머니 연배의 여성들이다. 나는 그녀들과 교재하면서 그녀들에 대한 연민이 각별해졌다. 겉보기에 마냥 선하고 쾌활하고 명랑한 그녀들이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참으로 기구하기 짝이없는 인생들이다.

마을 초입 한길 가에 작은집에 사는 소먹이 아줌마는 작년 초에 알콜중독으로 오랜 시간 앓아왔던 남편이 돌아가셨다. 살길이 막막하여 이질네 소먹이를 하고 산다. 보기에도 건강체질인 아줌마는 새벽부터 밤 중까지 일만하고 산다. 새벽과 저녁엔 소를 치고 소젖을 짜고 남는 시간에는 동네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생계를 잇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온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손가락질 한다. 그녀에게는 같은 동네에 연정이 있는 유부남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 유부남의 아내와 허구헌날 머리채를 붙잡고 싸운다고 한다. 동네서는 그녀에게 아예 이 동네를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서 태어나고 50평생 살아온 땅을 그녀는 떠나질 못한다.

깔끔한 보라엄마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집사님이기도 하다. 늦게 본 딸, 보라를 어찌나 잘 키웠는지 이번 학기에 전교 1등을 했다고 자랑을 한다. 입만 열면 보라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그런데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무남독녀 외동딸 보라는 업둥이란다. 아기를 못 낳는 보라 엄마에게 갓난아기 때 업둥이로 들어와서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아이를 잘 키운다. 보라 엄마는 지금도 보라를 위해 도시로 나갈까 고민 중이시다.

지원이 할머니는 이 동네서 가장 젊은 할머니다. 나이 마흔 다섯에 손주를 보고 할머니가 되셨다. 성격도 활달하시고 일도 잘 하시는 지원이 할머니는 그러나 시댁에서 버린 며느리이다. 부부싸움 하다가 남편이 홧김에 집을 나갔는데 그 길로 교통사고가 나서 남편이 죽자 내 아들 잡아먹은 귀신이라며 시부모님들이 집을 나가서 사신다고 한다. 동네서도 기가 센 여자로 통한다.

이렇듯 만나면 깔깔거리고 모였다하면 논 일, 밭 일 척척하는 그녀들도 마음속에 깊은 한을 품고 산다. 저녁녘이 되어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면 처음엔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한가했지만 요즘은 저 집집마다 얼마나 기구한 여인들의 삶이 빼곡히 들어 있을까... 오늘 밤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매일 땅을 파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고, 개밥을 챙기고, 소젖을 짜고, 닭모이를 주고, 비를 맞고, 남편을 거들고, 자식을 키우고, 부모를 공양하고, 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고, 이웃과 땅과 하늘을 보면서 사는 여인네들은 자신의 삶이 왜 기구한 지 모른채 가슴을 조이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당하는 처참한 고통과 운명처럼 다가온 슬픔이 무작정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생각한다. 그네들은 자연과 교감하기에 기쁨과 슬픔에 더 민감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체면치레를 하지 않고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싫으면 싫은대로 감정표현에 정직하다. 그렇게 땅에 뿌리박은 잡초처럼 생명력은 왕성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질 않는다.

나는 그녀들의 많은 고통의 대부분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동네에서 손가락질 하는 부도덕함이 사실은 이중 윤리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남의 아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키우는 것이 가슴 졸이는 한이 아니라 너무도 아름다운 하느님의 모습이라는 걸 칭찬하고 싶다. 버림받은 며느리는 손가락질 당해야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떳떳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걸, 그 용기가 대단함을 존경해야한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 동네 가난하고 헐벗은 기구한 삶의 여인들이 사실은 그 어떤 유지 마누라나 군수님 사모님보다 훨씬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