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총리가 이번 8,15에 전격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그동안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총리로 취임한 이래 매년 총리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왔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대를 의식해서, 8,15를 하루 이틀을 빗겨서 참배한다든지, 아니면 4월이나 1월에 택일을 해서 참배를 해왔다. 그런데 임기를 한달 남긴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이러한 행위는 한국과 중국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도발적’ 행위였다.

한국과 중국이 반대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야스쿠니문제가 역사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아직까지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아무리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부전 不戰의 결의를 다진다고 해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일본정부가 해방 6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일제 과거사문제와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콩으로 메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 진정성이 의심되는 사람에 대한 불신의 극단이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문제, 더 나아가 일본교과서문제에 대해 퇴행적인 일을 반복하고 있다. ‘위안부’문제를 기록한 교과서는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이제 일본의 청소년들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 그들의 교과서에 ‘위안부’에 관련된 서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술 더 떠서 일제의 대동아전쟁은 정당한 전쟁이었고, 자위적인 전쟁이었다고 강변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현재 진행중인 일본의 일련의 흐름들은 우경화 프로젝트로 요약된다. 우경화 프로젝트의 최고의 목적은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바꾸려는 것이다. 평화헌법을 개악시키려는 것은 ‘특별한’ 일본에서 ‘보통’의 일본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패전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부를 거머쥐었지만, 패전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위권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특별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이제 경제적인 부만큼 군사적인 권력을 갖기 위해선 다른나라들처럼 ‘보통’나라가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그 ‘보통나라’의 핵심에 군사력을 갖지 못하게 규정한 평화헌법 9조를 바꾸겠다는 말이다.

이제 우경화 프로젝트의 의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새로운 총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베 신조는 A급 전범이었고 일본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다. 그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면 평화헌법을 바꾸고,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을 바꾸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에서 보통국가로서의 일본을 강력히 주장한다. 포스트 고이즈미인 아베신조의 정치적 소신을 볼 때, 야스쿠니문제도 언제든지 불거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9월 말이면 일본은 새로운 총리를 맞는다. 일본은 어디로 갈 것인가? 참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걱정만 할 때는 아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들이 있고, 그들과 연대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시민이 있기에 우리는 어렵지만 평화와 인권을 향한 고행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국제적인 연대망을 형성하면서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 대만의 시민단체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가 공식적인 자격으로 참배하는 것을 정교분리의 원칙에서 위법이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더 나아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대만인 출신 27,656명과 한국인 출신 20,636명의 분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국제적인 움직임은 지난 8월 13일부터 8월15일까지 일본 동경 한복판 야스쿠니 신사 주변에서 야스쿠니 반대 국제행동의 날을 통해 결집되었다. 한국, 대만, 일본의 1,000여명이 야스쿠니를 둘러싸고 평화행진과 촛불행진을 했다. 한국의 기독교인을 비롯한 종교인들도 대거 참여하였다.

그동안 한국기독교는 역사문제에 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역사문제는 자기반성을 전제하지 않고는 진정한 역사의 실체에 다가서기 어렵다. 자기반성을 ‘자학’이라고 비판하는 일본 우익들, ‘자학’을 극복하여 ‘애국심’으로 무장하려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 한국기독교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온갖 산적한 과제가 있지만, 이제라도 한국의 역사문제와 과거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를 갖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