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심연을 채운 어둠이 형상을 입으면 말이 된다. 영혼을 파괴하는 말.

얼마 전 저녁 식사 자리. 딸아이가 말했다.
“나도 할머니처럼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
할머니가 하는 미용실에서 꾸준히 방문하는 손님들이 돈을 내는 모습을 보더니, 할머니는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말했다.
“아니야. 미용사는 돈 많이 못 벌어. 돈 많이 버는 사람이나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아빠는 돈도 못 벌잖아.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순간 울컥 했다. 사실인데. 그 말이 거친 칼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팠다. 너무 아팠다. 화가 났다. 안색이 변한 나를 보고 아내가 선수 치며 아이를 타일렀다.
“아빠에게 버릇없이 말하면 안 돼!”
늦었다. 밥상머리에서 화를 쏟아 부었다. 딸아이는 억지로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사과는 의미 없었다. 내 감정을 푸는 게 더 중요했기에.

요 근래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만으로 3년. 가사를 맡고 있지만 아무런 벌이 없이 백수로 지내는 나 자신에게 지쳐가고 있었다. 목사가 되기 위해 애면글면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목회는 그만두었다. 오히려 목사가 된 것을 후회하며 지내는 나날이었다. 당장 밥벌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목사. 자괴감에 사로잡혔고, 그런 절망이 폭발했다.

그날 말은 칼이 되어 서로의 심장을 겨눴다. 남은 것은 상처뿐.
사랑한다고 늘 고백하지만, 내 감정이 더 중요했다.

딸아이는 자주 묻는다.
“아빠, 나 미워?”

나도 안다. 아이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아이의 작은 실수, 늘 같은 잘못에 안색은 싸늘해진다. 이내 심연의 어둠은 뭉게뭉게 형체를 띠고 말이라는 비수가 되어 아이의 가녀린 영혼에 꽂힌다. ‘아, 이러면 안 돼’하는 후회에 아이에게 사과하지만, 쉬이 변하지 않는 아빠의 모습 속에 아이는 되묻는다.
“아빠, 나 미워?”

아이는 내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사랑한다고 습관처럼 말하는 아빠에게 받은.
밤이면 잠자리에서 상처로 헌 데를 핥으며 잠에 빠진다.

아내는 말한다.
“요즘 당신 지원이에게 너무 심하게 말해.”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내가 너무 싫다. 내 안의 어쩔 수 없는 이 어둠엔 누구도 쉴 자리가 없다. 희망이 있다면, 딸아이는 내 심연의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라는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