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8/2008

 

 

 

 

 

 

 

 

 

 

 

 

에니어그램영성 (89)

 

신 인간의 출현

 

 

 

 

 

  Emergence of New Humanity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글

제공 :
공동체성서연구원


에니어그램 격언






 


현대 사회에 에니어그램의 빛을 가져다준 구르지예프는 묻는다. ‘생명의 의미는 무엇이며,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왜 사는가를 묻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살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구르지예프는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다. ‘인류를 위하여 일하라. 인류를 위하여 살아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근원적인 물음을 묻지 않고, 해답도 찾지 않는다. ‘인류를 위하여 살라’고 하는 말을 들어도, 그저 도덕적인 격언으로 치부하고 실천할 생각은 안 한다. 그것을 실천한들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으랴? 그렇게 생각한다.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은 인류를 위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선구적인 과학자의 입장에서 밝힌 바 있다.
“인간은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일부로서,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된 일부이다. 그는 자신이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나머지 전체와 분리된 것처럼 경험하는데, 이는 인간 의식의 시각적 망상, 곧 착각이다. 이 망상은 우리에게는 감옥이 되어 우리를 개인적 욕망과 가장 가까운 몇 사람에 대한 애정에 갇혀 있도록 한정시킨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뜨거운 동정심의 원을 넓혀서 생명 있는 모든 것과 아름다움을 지닌 자연계 전체를 끌어안고 살아감으로써 우리 자신을 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구르지예프가 전해준 지혜는 인간의 자기 발견과 자기 실현을 위한 바탕의 철학이다. 이 지혜를 전수 받고 수련한 사람 중에, 12살 때부터 부모를 따라다니며 구르지예프에게 배운 스피스 Kathleen Riordan Speeth라는 분이 있다. 기라성 같은 초기 제자들의 삶을 지켜본 그는, 그럼에도 ‘수련의 결과로 변화된 사람을 아무도 볼 수 없었다’고 하였다. "구르지예프 수련 The Gurdjieff Work" 이라는 책 속에 그가 밝힌 수련의 목적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게 하여 해방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그의 실망이 어느 정도였을지 실감이 된다.

구르지예프가 서구 사회에 에니어그램을 전하면서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 연구원’ Harmonious Human Development Institute 을 세운 뜻도, 인간 발달의 조화와 통합을 지향하고자 함이었다. 이런 대전제와 기본 방향 안에서 에니어그램을 이해하고 수련해야 한다.

에니어그램은 우주의 상징이다. 대우주 macro-cosmos를 이해하기 위한 우주론이며 소우주 micro-cosmos 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론이다. 에니어그램은 영속적 운동 perpetual motion이다. 인간도 우주도 붙잡아 고착시킬 수 없는 역동적인 움직임 자체이다. 무릇 생명은 명사가 아니며, 언제나 운동 중에 있는 동사인 것이다.

그러니 성격 심리학의 틀 안에서 에니어그램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동사를 명사로 한정시키는 위험이다. 장기간에 걸쳐 에니어그램을 배우며 가르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나는 에니어그램 몇 번 유형의 몇 번 날개이다’라고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격정을 인식한 결과 그렇게 규정지었다면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를 정태적이고 평면적으로 이해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첫째, 격정은 극복되고 초월되어야 하는데도 이런 과제를 외면하기 쉽다.
둘째, 변화 지향적인 노력을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게 된다.
셋째, 접혀진 날개를 펴서 이미 활용하고 있는 날개와 균형을 이룰 것을 포기하게 된다.
넷째, 끊임없이 자기 발견의 결과를 가지고 자기 기억과 자기 관찰의 수련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
다섯째, 끊임없이 깨어 있는 의식으로 ‘조화로운 인간 발달’을 지향하지 않고 현상유지에 머물게 된다.

자기 관찰과 수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에니어그램은 결과적으로 MBTI 와 별 다른 차이가 없게 된다. 내적 지식 Inner Knowing이 아닌 피상적인 지식에 머물면서 역동적으로 변화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지 못하면 에니어그램은 자기 설 자리를 잃는다.

이런 현상에 대해 구르지예프도 경계한 바가 있다. 지식 Knowledge은 있으나 사람 됨됨이 Being가 그 지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첫째 감정의 조화와 균형이 깨지고,
둘째 건망증이 심해진다.
셋째 폭력에 호소하는 사람이 된다. 언어적 폭력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치닫는다.

에니어그램의 역사를 일별하더라도, 구르지예프의 직제자인 우스펜스키 P.D. Ouspensky나 오라쥬 A.J. Orage 같은 분들, 현대 성격 에니어그램의 할아버지라 일컫는 이챠조 Oscar Ichazo, 아버지라 일컫는 나란호 Claudio Naranjo 같은 분들도 이기적인 야심이나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여 에니어그램 공동체에 누를 끼치거나 균열을 일으키며 서로 반목하고 투쟁한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첫째, 객관적 지식으로 성격 에니어그램을 이해하였으나 구르지예프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 기억과 자기 관찰을 수행하며 자기 수련 Work on Oneself을 지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따라서 현실 속에서 수련 생활 Work Life을 치열하게 살지 못한 탓이다.
둘째, 끊임없는 자기 수련으로 격정을 다루지 못한 결과 명예와 이익과 권력 앞에 눈이 먼 나머지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져서 추방, 투쟁, 반목, 고소, 갈등, 분열 등 안타까운 모습을 노정시켰다.
셋째,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충실하지 못한 탓이었다.

자기 발견을 통하여 각자가 성격 에니어그램의 유형을 알았을 때는, 먼저 자기 자신의 됨됨이를 알아차리고(동일시 Identify), 다음에는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님을 자각하여(비동일시 De-Identify), 통합의 방향, 즉 해피 포인트 Happy Point로 나아가야 한다. 3의 법칙 안에서 9-3-6-9의 방향으로, 7의 법칙 또는 에너지 흐름의 법칙 안에서 1-7-5-8-2-4-1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순환의 법칙에 따라 지속적 변화의 흐름이 이어질 때 자기 유형의 해피 포인트로 돌아오게 된다. 똑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할지라도 돌아왔을 때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다. 이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인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엘리엇 T.S.Eliot의 시에는 이런 회귀 현상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

We shall not cease from our exploration,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으련다.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ation
우리의 모든 탐험의 끝은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우리가 떠났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자리를 진정으로 알게 된다.

이런 것을 모르고 살면,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면서 격정에 사로잡히고 더욱 퇴화한다. 격정의 노예가 되면 에니어그램을 몰랐던 때보다, 또는 모르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심하게 격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인간 현상을 깊이 있게 관찰해 왔던 구르지예프는 일찍이 ‘마법사들의 투쟁’ Struggle of Magicians이라는 발레 Ballet를 창작하였고, 패터슨 William Patrick Patterson 은 같은 제목의 책을 써서 우스펜스키가 스승 구르지예프를 어떻게 떠났던가를 상세히 서술한 바 있다.

오늘 에니어그램 공동체로서 한국에니어그램 협회를 창립하고자 하는 우리는 이들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에니어그램의 본질과 아울러 에니어그램 수련의 근본 Fandamentals을 새롭게 인식하며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스스로 다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자아라는 감방’ Self-Prison에서 벗어나 본성 Essence을 회복하는 ‘신 인간의 출현’ Emergence of New Human을 확인하며 선포해야 할 것이다. 격정의 박스 Box of Passion에서 나와서 변화와 변환 Transformation and Conversion을 거듭하면서 덕목을 실천하며 사는 새 사람으로서 자유와 건강과 행복을 스스로 누리며, 다른 사람들도 누리도록 뜨거운 동정심, 무조건의 사랑으로 살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이미 언급한 성격 에니어그램의 틀을 뛰어 넘어야 한다. 파워 에니어그램과 에니어그램 영성으로 에니어그램의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 한국인의 특성을 에니어그램의 힘으로 살리면 세계 에니어그램 공동체가 성격 에니어그램의 틀에서 벗어나 에니어그램 영성으로 바른 길을 가도록 힘을 얻게 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인의 국민성은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이다. 3,000명을 대상으로 내가 실시한 조사 통계를 보면 9번 유형이 20%에 달하며, 3번과 6번 유형을 합하면 3,6,9 세 가지 유형의 합이 59%에 달한다. 이런 특성이 집합 성격으로 나타날 때는 9번 유형의 특성과 에너지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9번 유형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덕목이 특유의 영성과 합쳐지면 앞으로 한국의 에니어그램 공동체가 세계 에니어그램 공동체에 이바지하게 될 뿐 아니라, 한국이 세계와 인류문화에 공헌하게 될 것이다.

새 비전을 봤을 때는 그 실현과 목표 달성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오늘 한국 에니어그램협회 창립이 위대한 첫 걸음이요, 계속 변화와 성숙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명제를 목표로 삼아 우리 모두 치열하게 수련해야 한다.

1. 너 자신을 알라.
2. 아무것도 무리하지 말라.
3. 매사를 스스로 검증하라.
4. 어떤 고난도 필요한 고난으로 받아들이라.
5. 고난을 견디는 법을 배우라.
6. 자기 관찰을 하라.
7. 자기 기억을 하라.
8. 격정을 다스리라.
9. 끊임없이 변화하라.
10. 끊임없는 자기 수련으로 통합과 조화를 이루라.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 실천방안을 살리라.

1. 명상하라.
2. 호흡수련을 하라.
3. 밥 따로 물 따로 식습관을 수련하라.
4.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5. 90분 주기의 수면을 의식하라.
6. 자신이나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7. 관용과 배려를 실천하라!

수련은 모름지기 각자가 실존적으로 수행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에니어그램 수련은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며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갈등과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수행이기에 아무도 혼자서 할 수가 없다. 인생길이 그러하듯이 에니어그램 수련은 더욱 더 가파른 길을 가는 것과 같다. 함마르셸드 Dag Hammarskjold는 영성 수련의 길을 ‘오솔길’이라 표현하면서, 함께 또는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솔길의 흔적’ The Markings을 남기며 나아간다고 하였다. 구르지예프는 1세대 직제자 그룹의 여성들에게 가르치면서 수련의 가파른 길을 가려면 서로 로프로 동여매고 함께 가야 하는 법이라고 하였다. 패터슨이 쓴 ‘로프그룹의 여사들’ Ladies of the Rope 에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이런 뜻에서 오늘 탄생하는 한국에니어그램협회는 모두가 로프그룹을 이루는 역동적인 에니어그램 공동체가 될 뿐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문화공동체로서 세계에 이바지할 비전을 마음 깊이 품고 이를 선포해야 할 것이다.

* 2008년 6월 28일, IEA-Korea 한국에니어그램 협회 창립총회 기조강연, 김영운 박사.




에니어그램 격언



수련 인성을 위하여 : 늘 깨어 있으라

기계적 삶에 저항하며 살기 위하여
수련하는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정진, 또 정진!



명상 34

에니어그램 유형이
단순히
우리의 자아를 비춰 보는 거울에
그쳐서는 안 된다.

Our enneagram type
should not be
merely mirroring our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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