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08

 

 

 

 

 

 

 

 

 

 

 

 

  강정규 연재동화

 

다 배 이 야 기 (1)

 

 

 

 

 

 

 

 

 

 

 


강 정 규

동화작가,
"시와 동화" 발행인,
한국아동문인협회장,
단국대 초빙교수.






 


아빠가 돌아오시자 엄마가 날 불렀어요. 아빠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할아버지가 거기 계시거든요. 나는 다배의 어릴 적 사진을 세워놓고 그걸 그림으로 그리고 있었어요.
“너 또 다배 그리지?”
“응.”
“아빠랑 동네한바퀴 돌고 올래? 오는 길에 목욕탕에도 다녀오고.”
엄마는 설거지를 하며 무심한척 말했지만 그 말 속엔 여러 가지 뜻이 숨어있어요. 아빠가 방금 병원 (-이라지만 실은 양로원)에 다녀오셨으므로 목욕탕에 가 씻으라는 것…. 나는 다배 그림이나 그리고 앉아있을게 아니라 운동 좀 해서 배를 좀 들여보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목욕탕에 가서 다배 생각은 말끔히 씻어내고 오라는 거죠.
“엄마 만보기 어딨는데?”
내가 운동화를 신으며 말했죠.
“만보기는, 산책 가는 걸 가지고서는.”
아빠가 등산화 끈을 조이며 말했어요.
아빠는 방금 산책이라고 했지만 그건 아빠가 흔히 쓰는 말씀이죠. 엄마는 또 동네 한 바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등산이 맞아요.
집을 나서 약수터 길을 오르다보면 양쪽 언덕으로 크고 작은 밭이 보여요. 그 밭은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복숭아밭이었대요. 지금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요밀조밀 여러 가지 농작물을 길러요. 무, 배추, 상추, 쑥갓에다 고구마, 감자, 토란, 땅콩 그리고 오이, 고추, 당근, 가지, 토마토, 옥수수도 심어요.
봄이면 꿩이 내려오고 청솔모랑 다람쥐가 사는 산. 골짜기 돌멩이를 들추면 가재가 뒷걸음쳐 도망가는 걸 볼 수 있는 곳. 약수터 주변엔 배드민턴장도 있고 철봉, 윗몸일으키기, 허리 돌리기 등 몸을 푸는 운동기구들도 있어요.
나는 벌써 숨이 차요.
우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돌리는데 아빠는 평행봉에 한 번 매달렸다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요.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 거죠. 나는 비탈길을 헉헉거리며 올라요.
나무토막 모양의 시멘트 기둥을 세워 만든 층계를 한참 오르다보면 갈림길이 나와요. 곧장 오르면 산꼭대기, 곁길로 빠지면 산허리를 돌게 마련인데 아빠말대로 하면 산책로죠. 오리나무와 소나무, 떡갈나무 이파리들이 떨어져 쌓이고, 썩고, 그 위에 또 다시 솔잎이 떨어져 쌓이고 밟히다보니 마치 우레탄을 깐 길 같아요.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좋아요. 거기다 오르막이 없는 평지라구요. 엄마는 만보기를 차고 이 길을 걷는데, 엄마 걸음으로 약 오천 보 쯤 된대요. 그걸 글쎄 동네 한 바퀴라는 거죠.
소나무 숲길을 기분 좋게 걷다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거기 아주 커다란 적송이 두 그루 서 있어요. 아빠와 엄마는 거기서 자기 나이만큼씩 등허리를 찧어요.
“아빠!”
나는 문득 할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응?”
“할아버지 많이 아프신 거야?”
“응!”
아빠는 건성으로 대꾸하는 것 같아요. 아빠도 어쩌면 할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아빠와 내가 집을 나설 때 엄마가
“어서 돌아가셔야지, 여러 사람 고생시키지 마시구.”
이랬거든요. 나는 그때 다배를 생각했어요.
어쩌다 보니 다배 얘길 빼 먹었네요. 다배는 얼마 전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늙은 개죠.
우리집은 김씨 집안인데, 내 항렬이 배자 돌림이래요. 장남인 내 이름을 가나다의 가로 시작하고, 언젠가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 생기면 지어줄 이름 나배를 건너뛰어서 세 번 째 이름을 붙여준 거죠. 그 다배가 집을 나가기 전, 그러니까 사흘 전인가, 아빠는 앞을 못보고 거실을 헤매다가 물그릇을 뒤엎어버린 다배를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불쌍한 것, 어서 가야지. 가야구 말구.”
한숨 섞어 이렇게 말했던 거죠.
‘보고 싶은 다배, 어딜 돌아다니나.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꿜 꿜 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꿜! 꿜꿜꿜!
분명 그것은 다배의 어릴 적 목소리였어요. 딸랑딸랑 종소리도 들려왔어요. 나는 토끼처럼 두 귀를 쫑긋 세웠죠.
“다배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나는 소리치며 달려갔어요. 그런데 틀림없는 다배였어요. 다배는 이동화장실 뒤에서 뛰쳐나왔어요. 그러나 금세 뒤에서 목줄이 당겨지며 앞발을 들고 허우적댔어요.
(계속)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선정한 2007년도 우수문학작품.

 

 

 

 

 

 

 

 

 




120-802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152-28 2층   Tel 02)312-6803, Fax 02)374-7277
  cbs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