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이 다솜학교 식구가 되어 구로동의 작은 교회와 인연을 갖게 된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지금은 월요공동체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매번 목사님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은사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족에게 10년의 세월은 마치 커다란 폭풍과 싸우는 시간들과도 같았다.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건강문제는 낭만적 성격의 철없는 막내로 사랑만 받다 시집을 오게 된 내게는 감내하기 힘든 무게의 짐으로 다가왔다.

지낸 시간들이 너무 괴로워 잊어보자고 꽁꽁 감춰둔 생각들을 끄집어내자니 눈물부터 앞선다. 이젠 다 지난 추억이려니 하며 속 시원히 울어 버리고 이 글을 시작한다.

좋지 않은 건강으로 매일 바쁘고 힘들게 사는 남편으로 인해 우리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정서적 공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성격이 형성되어 진다는 6살을 전후해서였다. 나는 혼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부모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도 낯선 초보주부였다. 하지만 낭만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며 책임감을 중요시했던 나로서는 우리아이에 대한 문제는 필히 풀어야 할 과제였다. 그런 나에게 다솜학교는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열쇠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공동체의 따스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남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간경화로 진전되어가고 있었으나 우리가족은 앞으로 닥쳐올 큰 폭풍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기다리고만 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사회적 지위나 영예를 포기하고만 있을 수 없는 나이여서 자신의 건강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이 상황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힘들어 다솜학교 조차도 포기하고 싶을 때에 감사하게도 우리아이는 다솜학교를 즐기며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 즈음에 에니어그램을 접하게 되었고 우리가족의 유형을 파악하게 되었다. 아이는 3번의 성공유형, 나는 2번의 협조유형, 남편은 4번의 예술가형이다. 감정유형의 집합체인 우리가족의 갈등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나 명쾌하고 모든 것이 쉽게 설명될 수 있는 일이지만, 우리가족이 객관적인 눈으로 또한 에니어그램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을 보내야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우리가족의 삶에 에니어그램은 절실한 동반자이다.

간경화에 이어 2번의 암이라는 거센 폭풍이 닥쳐왔다. 첫 번째 간암은 고주파로 시술을 하여 해결 되었으나 2년 반 만에 재발된 간암은 간이식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이 두려운 상황이 의외로 무섭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에니어그램으로 무장된 마음이 내게 축복으로 감싸고 있는 듯해서였다.

무사히 중국에서 수술을 마치고 온 나에게 큰 숙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에니어그램의 길을 같이 가야하는 숙제였다. 다행히 2005년 1월 다솜학교와 함께 26기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에 남편도 같이 가게 되었다. 남편은 고맙게도 부드럽게 융화되어 갔다. 그 영성수련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공동체의 사랑을 깊게 느끼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은 우리가족으로 하여금 날개를 찾게 해주었다. 남편은 4번에 3번, 나는 2번에 1번, 아이는 3번에 4번이었다. 우리가족은 비로소 각자의 본성을 보면서 서로를 이해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오랜 고난이 은총이 된 시간들 이었다. 또 이젠 어떤 폭풍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폭풍 뒤에는 언제나 평화가 찾아오니 말이다.

지난 5월 22일 우리가족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대한성공회 신자인 우리가족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40주년 행사를 개최한 잠실 올림픽공원으로 가게 되었다. 이날의 행사에는 사제 서품식도 같이 거행되었다. 마침 윤명선 교장선생님의 따님이신 윤세나 부제님이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다. 그 행사장에서 우리가족은 그동안 대성당에서 함께했던 신부님과 수녀님들을 뵙게 되었다. 모두들 우리가족을 잊지 않고 지금도 우리가족의 어려움들에 대해 항상 기도와 함께한다며 위로해 주셨다. 공동체의 뜨거운 사랑이 우리가족에게 전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예전 같으면 복잡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꺼려했고 참가한다고 해도 끝까지 남아 있으려 하지 않던 남편은 사랑의 힘에 이끌려서인지 낯 설은 윤세나 신부의 축복기도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우리가족의 차례가 되어 신분을 알리자 반갑게 맞아주셨다. “소식 들었어요. 기도드리고 있어요.”라는 말씀에 우리가족은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어린 축복기도를 받았다. 우리가족은 공동체의 사랑을 느끼기까지는 외롭게 이 고난들과 싸워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과 많은 사람들이 주는 관심과 사랑의 공동체 축복으로 우리가족이 존재한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워하고 움추렸던 지난 시간들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공동체 사랑의 무한한 힘에 감사드린다.

공동체 여러분 정말 사랑합니다. 함께해서 정말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