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하루 24시간이 짧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이럴 때면 생각나는 것이 어디 한적한 곳에 가서 한 주간 푹 쉬고 오고 싶은 마음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외부와의 통신을 끊고 떠나고만 싶습니다.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말하지 않고 한 주만 푹 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 속에 사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일에 찌들려 일부러 도심을 벗어난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들과 같이 이웃에 살면서도 매일 벽을 만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청각장애인입니다.

장애인들 가운데 가장 힘든 장애인을 들라면 누구를 들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는 청각장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자신의 장애가 가장 힘든 것으로 느낄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누가 더 힘든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도리에 맞지 않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장애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을 말하라면 저는 그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시각장애인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종종 들어봤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언론에도 많이 소개되었던 강영우 박사는 미국에서 한국인으로는 최고위층인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 가운데는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실로암병원을 설립하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김선태 목사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이 분을 두 번 만났는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만남은 잠시 스치듯 인사를 드렸는데 두 번째 만남에서 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없는 사람을 만나는 목사님이 잠시 만난 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에는 전체교인 가운데 청각장애인들이 80% 정도 됩니다. 저는 항상 이들과 일정한 거리감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수화를 잘 못하는 것도 원인이지만, 정작 그 원인은 청각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융화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사회적 책임이 무엇보다 큽니다.

지난 3일과 4일 청각장애인 수천 명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과 대학로에서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청각장애인들은 자동차와 TV의 장례식도 가졌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분노하며 집회를 한 것은 수십년간 가슴에 담아두었던 한을 풀기 위한 절규의 자리였습니다.

현재 청각장애인들은 1종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습니다. 도로교통법상 2종 운전면허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해 경찰청은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1종은 영업용 차량을 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해서 안 된다는 답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청각장애인의 사고율이 비장애인들보다 높다는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청각장애인들에게 운전이 위험하다면 2종 운전면허도 주지 말아야죠. 이러한 정책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은 하다못해 운전을 하거나 작은 사업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직업이 없는 청각장애인에게 1종 운전면허 취득은 생존권과 직결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농아인교회에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인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12인승 승합차를 대부분 갖고 있는데 1종 면허가 주어지지 않으니 무용지물이거나 어쩔 수 없이 불법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서부터 살아가면서 가장 많은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TV일 것입니다. TV는 이제 단순한 여가 활용 수단이 아니라 정보의 도구입니다. 하다못해 드라마의 내용을 모르면 왕따를 당한다고 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이 TV가 바보상자일 뿐입니다. 학교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청각장애인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교사 중에도 상당수가 수화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청각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그러니 벌금 70만원을 못 내서 자살을 하는 사람이 청각장애인들 가운데는 생기는 것입니다. 이들의 고통, 삶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가 아무리 소수일지라도 청각장애인들의 귀를 열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