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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담긴 라면 상자는 자전거 위에 실렸습니다. 자전거는 달려갑니다. 덜덜거리며 달려갑니다.
라면 상자에는 구멍이 많이 뚫려 있습니다. 그 구멍을 통하여 시원한 바람이 들어옵니다. 우리들은 떨었습니다. 깃털에 묻은 물기가 마르느라고 추웠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기분이 좋아졌어!”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야, 저것 좀 봐!”
또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나는 상자에 뚫린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거센 바람에 숨을 들이켰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았습니다. 지나치는 들판에는 파란 잔디가 덮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꽃도 피어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개구리 소리, 송아지 울음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우리들은 시골에 온거야!”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배 고프고, 목이 말라!”
또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야, 병아리다!”
아이들이 소리쳤습니다.
우리들은 라면 상자에서 나왔습니다. 물 불린 좁쌀이 눈앞에 뿌려졌습니다. 우리들은 정신 없이 쪼아먹었습니다. 그리고 물도 먹었습니다. 배가 불렀습니다. 그러자 졸음이 왔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까무룩 졸았습니다.
“삐약삐약, 이상한 친구들이 왔어!”
처음 듣는 목소리였습니다.
“얘, 그만 자고 일어나!”
누군가가 나의 몸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눈을 떴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병아리였습니다.
“내 이름은 알록이야, 안녕!”
처음 보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
나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름이 뭐지?”
알록이가 다시 말했습니다.
“안녕, 난 이름이 없어!”
나는 머뭇거리다 말했습니다.
“엄마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니?”
알록이가 말했습니다.
“…….”
나는 또다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런 거 없어. 기계 속에서 깨어났단말야…….”
이렇게 대답하기는 웬지 싫었습니다.
“노랑이, 노랑이라고 하자……어떠니? 내가 지어준 이름이…….”
알록이가 말했습니다.
“응,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노랑이야, 우린 이제 친구가 된거지? 그렇지?”
알록이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너는 엄마가 있니?”
내가 망설이다가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 엄만 얼룩이야. 알록이 엄마는 얼룩이, 얼룩이 새끼는 알록이…… 해해해…….”
알록이가 명랑하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엄마가……누구지?”
내가 말했습니다.
“엄마가 누구라니, 별걸 다 묻는구나. 엄마는, 엄마는 말야…… 음, 내가 까고 나온 알을 낳고, 자기가 낳은 알을 꼭꼭 품속에 품어 안아서, 스무하루를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뜨겁게 품에 안아서 알 속에서 내가 병아리가 되어 나오게 한, 그러니까 그게 내 엄마야.”
알록이가 말했습니다.
“스무하루 동안이나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고 품어 안으면, 알 속에서 병아리가 나오니? 난 말야, 커다란 쇠로 만든 이상한 상자 속에서 병아리가 되었거든? 그 상자 속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아주 뜨거웠어…… 지금도 내 귀 속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애.”
내가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얘, 노랑이야, 우리 엄마한테 함께 가보자, 응?”
알록이가 말했습니다.
“그래, 너의 엄마가 보고 싶어!”
내가 말했습니다.
알록이와 나는 집 모퉁이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어미닭이 병아리 몇 마리와 놀고 있었습니다. 얼룩덜룩한 깃털을 가진 어미닭이 기다란 지렁이를 한 마리 쪼아서 병아리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개미들이 지렁이 몸뚱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개미들을 쪼아 죽이면 그것도 병아리들이 먹어치웠습니다.
“엄마, 새 친구가 왔어, 엄마!”
알록이가 말했습니다.
“어딜 짤짤대고 돌아다니니? 또 짐승한테 잡혀 먹히려구…… 새 친구고 뭐고, 어서 와서 고기나 좀 먹어두어라…….”
어미닭이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시골에는 말야, 먹을 것도 가지가지지만 우리들을 노리는 무서운 짐승들도 많아. 솔개라는 커다란 새는 공중에서 빙빙 돌다가 느닷없이 날아 내려서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들을 채가고, 족제비란 놈은 밤중에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우리들의 목줄기를 단번에 물어 죽여서 끌고 가거든. 사나운 개랑, 산에 사는 여우나 늑대도 아주 무서운 짐승이야. 엄마는 그런 짐승들에게 우리들이 물려 죽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맛있는 먹이를 찾아준단다. 밤이면 우리들을 품속에 안아서 따뜻하게 잠잘 수 있게 해주고, 낮이면 우리들을 몰고 다니며 세상 살아가는 지혜도 가르쳐주거든! 퇴비장이나 마늘밭에서는 굼벵이를 잡아먹을 수 있고 잔디 속에는 여러 가지 벌레도 살지만, 연한 풀이파리도 가끔 쪼아먹어야 튼튼해진다고. 그리고 땅에 사는 짐승들은 날개가 없기 때문에 날 수 없지만, 우리들은 웬만큼 날 수 있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을 잡아먹으려고 짐승이 쫓아올 때는, 뛰어서 도망가는 것보다 담장 위나 변소 지붕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 최고라고 가르쳐준단다. 그래서 우린 가끔 나는 연습을 하기도 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낮은 곳에서 아래로, 높은 곳에서 아래로, 마루 위에서 마당으로, 언덕 위에서 개울 둑 밑으로 곤두박질치듯 내려 뛰면서 날갯짓을 자주 해대는거야. 그러면 조금씩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별이 밝게 빛나는 밤에, 알록이는 어미닭의 날개 깃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소곤거리듯 이야기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