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준비를 하는 계절이면,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참으로 황홀한 광경이 펼쳐지곤 합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면, 맞은 편 하늘에 검붉은 태양이 장엄하게 떠오르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펼쳐진 논의 끝자락에 그 태양이 퐁당 빠져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논에 가득한 물이 잔물결을 치는 바람에, 그 물에 비친 태양의 그림자도 덩달아 춤을 추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조금 더 보탠다면, 물댄 논에 비친 태양의 그림자는 진짜 태양보다 더 황홀합니다.

그렇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행복해하던 어느 토요일 아침, 마치 수많은 별들이 논에 빠져 있는 듯, 물댄 논에는 그 무엇인가가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야근을 마친 ‘무쉬탁(파키스탄 근로자)’이 교회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무쉬탁은 그 반짝이는 정체가 몹시도 궁금했는지, 논 가까이 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식사를 마친 후, 따가운 햇살세례를 받으며 논이 있는 곳으로 좀 더 가까이 가보게 되었습니다.

그 반짝이던 정체는 물고기 떼였습니다. 한강농수로를 타고서 많은 물고기들이 논으로 들어와서 팔딱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비료부대에 물고기들을 주어 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이었습니다.

호기심도 많고 사교성까지 뛰어난 ‘무쉬탁’은 짧은 영어로 통성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 우즈베크, 필리핀, 중국, 몽골, 베트남, 파키스탄, 그렇게 7개국 사람이 모였습니다. ‘무쉬탁’은 영어가 통하지 않는 중국과 몽골 사람들에게는 온몸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그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우리 누나’라고.

그 후, 지금까지 죽 외국인 노동자들을 접해오는 동안, 저는 그들의 민족성과 지역특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물고기를 잡으러 논 가운데로 뛰어든 것은 베트남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에 돼지고기 요리를 도맡아 해준 것은 중국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술에 취한 채 농구하러 오는 이들은 몽골 사람들입니다.

70년대 이태원 골목과 같은 우리 동네, 이제는 ‘무쉬탁’을 비롯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불법체류자라고 해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새로운 공단건설 계획으로 인하여 다수의 공장들이 폐쇄되면서, 남아 있는 외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주말마다 마을버스에는 이방인들로 가득차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도로가 좁고 험하기 때문에, 아주 오래되고 낡아서 털털거리는 작은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이 되고 있습니다. 주로 노약자들이 마을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안전하게 승하차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느라고, 각 정거장에서 정차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진 상가 처마 밑에 제법 큰 캐리어 서너 개를 옆에 두고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을버스가 도착하자, 캐리어 두 개를 힘겹게 끌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하지만, 그 외국인근로자가 상가 처마 밑에 남겨둔 캐리를 가지러 가려고 하자, 버스기사는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그냥 타고 가던지, 아니면 아예 내리던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 외국인 근로자는 내릴까말까 망설이다가 남은 짐을 포기한 채 그냥 자리에 앉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를 보니, 비에 젖은 머리이며 옷매무새가 검은 얼굴의 그 모습을 더욱 슬퍼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참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반짝거리는, 그야말로 기막히게 예쁜 쌍꺼풀 진 긴 속눈썹이 눈물로 흠뻑 젖었습니다.

낡은 대로 다 낡아버린 마을버스를 빡빡한 배차시간에 쫓겨서 점심도 거른 채 운행해야 하는 버스기사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근로자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처럼 힘든 환경과 조건 속에서 일하는 마을버스기사로서는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를 헤아려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그토록 갖기를 소원하는 ‘대한민국주민등록증’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 땅에 거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들을 지금보다 좀 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따뜻하게 대하면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서 존중해주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