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많은 것을 먹으며 삽니다. 밥을 먹고, 공기를 먹고, 사랑을 먹고, 마음을 먹고, 꿈을 먹고, 나이를 먹고, 또 눈으로 코로 귀로 입으로 손으로 발로 열심히 먹습니다. 아이들은 매 순간 쭈욱 쭈욱 세상을 빨아들입니다. 내적 에너지의 쓰임새가 가리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데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의 수용성은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쪽에서 보면 자기한테 해를 끼칠 독도 무분별하게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불건강하고 상업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들도 그대로. 그래서 아이들이 세상을 바로 보는 힘을 기를 때까지 아이들이 어떤 문화 속에서 자라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배움터라고 하면 흔히 학교를 떠올리지만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만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무의식까지 휘어잡고 있는 가장 강력한 배움터는 단연 가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아이는 엄마 아빠처럼 눈웃음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어떤 아이는 부모님의 억양을 그대로 따라하고, 어떤 아이는 뒷태와 걸음걸이가 부모님을 꼭 빼닮았습니다. 엄마 아빠의 말과 행동, 가치관, 생활 습관, 관계 맺는 방식, 욕구를 풀어내는 방법은 아이들의 세포 하나하나 속에 심깁니다. 아이들은 때로 아주 진지하게 말합니다. “우리 엄마가 ~~~~래요.”라고요. 보통 그런 말들은 아이한테 절대 불변의 진리로 작용하곤 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해나가려면 그만큼 가정이 성숙해야 합니다.

가정에 이어, 100년 전에 아이들한테 영향을 주는 제 2의 배움터는 아마도 마을공동체였을 텐데, 현대사회에서는 TV, 컴퓨터 같은 대중매체가 큰 선생님 노릇을 합니다. 아이들은 대중매체로 전달되는 내용이 어떤 목적으로 선택된 것인지, 어떤 기준에서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있는지 모르고 그 모든 게 거짓 없는 진실이라고 믿을 때가 많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봤는데요.”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마치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말하고, TV에서 나오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제 친구 이야기하듯 할 때도 있지요. 볍씨 아이들도 때로 TV에서 나오는 유행어를 반복하고 어떤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놀이를 따라 합니다. 어떤 가정에선 TV를 없애고 지내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고, 또 아이들이 학교와 집 안에서만 사는 게 아니니까 결국 어디에선가 TV를 만나게 되는 거지요. 근데 대중매체로 전달되는 자극은 워낙 강렬해서 아이들의 뇌리에 깊이깊이 박힙니다. 그러다보면 협동하고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경쟁해서 이겨야만 하는 것처럼, 선량한 마음과 어진 성품을 가꾸어나가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인 것처럼, 서로 나누고 소통하며 사귀기보다는 일방적이고 소유하려는 관계가 올바른 것처럼 오해하게 됩니다.

올해 볍씨의 화두 중 하나가 ‘볍씨, 제자리 찾기’입니다. 대안적인 삶, 대안 사회를 꿈꾸며 시작했던 첫마음이 시간이 흘러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슬금슬금 이런 저런 이유로 들어와 있는 여러 가지 문화들을 의식해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시점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연초부터 교사들은 어떤 과정을 거치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고 이런 저런 준비들을 했어요. 볍씨에선 한 학기에 세 차례씩 학부모 강좌를 여는데, 올해는 ‘TV, 대중문화에 대한 시선 바꾸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TV가 아이들한테 정서적으로나 인지적으로나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TV와 사회 권력 간의 관계가 어떠한지 이야기를 듣고, TV 속에 드러난 왜곡된 성의식을 파헤쳐보기도 했지요. 설문지를 돌리기도 하고, 학교 안에서는 아이들과 대중문화에 대한 토론을 이어 나가고 있어요. 5월 말 부터는 TV 안 보기 100일 실천단을 꾸려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힘을 더하려고도 합니다.

비옥한 땅에서 건강하고 좋은 결실이 맺어지듯이 따뜻하고 밝은 기운이 가득한 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튼튼하고 힘차게 자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아이들이 맘껏 제 안의 씨앗들을 전부 틔워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게 지금 어른들의 몫. 미룰 수 없는 우리들의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