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해일이 일어 ‘검은 파도가 덮칠 때, 정쟁을 멈추는 일본인들을 보았습니다.’ 센가쿠 열도와 댜오위다오라 부르는 섬 때문에 일어난 영토 분쟁을 넘어서 대재앙을 맞은 일본을 돕는 중국을 보았습니다. 쿠릴 열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도 일본을 돕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인터뷰에서 말하였습니다. ‘역사 문제도 있고요, 독도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앙을 당한 일본을 우선 도와야죠.’ 누구보다 상처를 안고 살아온 일본군 위안부였던 한 맺힌 할머니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항의 대신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죄는 밉지만 사람이 밉지는 않습니다. 일본, 힘내세요!’ 대재앙 앞에서 갈등도 미움도 한도 넘어서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더 처절한 경험을 하였던 소록도의 한센인들의 미담은 눈물 없이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소록도로 강제로 이주시켜 격리 수용하면서 생체실험에서 강제노역에 이르는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고통을 못 참아 탈출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 1세대 가운데 아직 살아있는 60여명을 포함하여 700여명의 소록도 한센인들이 일본을 위하여 모금하였습니다. 여기에 감동된 후원 단체에서 500만원, 변호인단에서 500만원을 그들이 기부한 금액에 합쳐서 1770만원을 일본 적십자사에 보냈습니다.

누가 시킨들 되는 일이 아니지요. 온 세계가 일본을 위하여 기도하고, 일본을 돕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결같이 대재앙 앞에서 인도주의나 박애란 말을 떠올리기 전에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본능이요, 인간 본연의 모습임을 보았습니다.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에서 늘 의식의 잠에서 깨어나 객관적 의식을 갖추어 우주의식과 생명의식을 지니자고 말하는 것이 일시에 현실로 살아났습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신기한 일입니다. 위기의식이 진실을 드러내고 사랑을 드러내게 한 것입니다. 평소에 위기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지는 경험입니다.

이런 놀라운 경험 속에 떠오르는 낱말들이 줄을 잇습니다. 예부터 맥을 이어온 ‘사해동포주의’ Cosmopolitanism, ‘우주선으로 명명된 지구’ Spaceship Earth, ‘인간가족’ Human Family, ‘생명공동체’ Bio- Community, ‘지구촌’ Global Village 등의 낱말 모두가 이상을 말하든 현실을 서술하든,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서 생명을 누리며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할 인류공동체를 깊이 의식하게 합니다.

각기 입장이 다르거나 이해관계에 얽혀서 때로는 갈등하고 다투지만 온 인류가 대재앙이라 자각하는 위기 앞에서는 하나가 되는 경험입니다. 의식이 좁아서 부족의식이 강하면 내향적으로 부족끼리는 결속되어도 다른 부족에 대하여는 배타적으로 충돌하기 쉽습니다. 이와 같이 쇼비니즘적인 민족의식이나 국가의식 상태에서도 다른 나라, 다른 민족과 부딪히고 싸우기 쉽습니다.

외적이 나타날 때마다 내부결속이 강화되는 속성이 ‘검은 파도가 덮칠 때 정쟁을 멈추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원한과 미움도 내려놓거나 넘어서게 합니다. 일본인들은 물론, 세계인들 모두가 이번 동일본 대지진과, 해일과 원전사고를 일컫는 ‘트리플 재앙’을 겪으면서 얻는 값진, 정말 엄청난 대가를 치루면서 배운 교훈을 소중하게 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1970년대에 세계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지역에서 군사독재가 횡행할 때 ‘의식화 운동’이 펼쳐졌던 일을 기억합니다. 민주ㆍ자유ㆍ인권을 위하여 비평의식을 높이고, 불의에 항거하는 행동을 하기 위하여 교육이 곧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반독재ㆍ민주화 운동을 위하여 의식화 운동이 전개된 것이 그때의 일이었다면, 21세기 오늘은 생명공동체로서의 지구와 인류를 위하여 새로운 차원의 의식화 운동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인류가 하나 되기 위한 ‘우주의식’과 ‘생명의식’을 높이는 일이 일어나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