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본에 닥친 지진과 쓰나미 이래로 ‘미약한 인간의 실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인간이 참 작고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이 쌓은 방파제도, 자랑스러운 대도시 문명과 과학 기술도 지진과 해일 앞에서 영 무력하였다. 인간의 자랑 뒤에 숨은 속임수, 곧 원전의 이익만을 강조하고 위험과 관리 소홀을 숨긴 바람에 일본은 물론 한반도와 세계가 방사능 공포에 떨게 되었다. 또한 인간이 미약하다는 생각이 한국사회의 요즘 현실 때문에도 계속 떠올랐다. 특히 가족단위의 생계형 자살이 이어지고 대학등록금이 없어서 젊은이들을 자살하게 하는 곳이 우리사회이다. 내가 편하게 사는 만큼이나 그들의 죽음에 공조한다고 자책하게 된다. 경제정의를 이루거나 원전과 지구온난화와 사막화 같은 것을 막기에 스스로 무력하다는 생각도 한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실 때의 성서 맥락이 새롭게 보인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고 운을 떼신다. 그랬더니 제자들은 서로들 “저는 아니지요?”라고 한다(마태 26:22). 곧, “우리 중 저 친구가 배신할지는 몰라도 저는 아닙니다.”는 말이다. 이로써 제자들은 예수를 배신하기 전에 먼저 서로를 배신한다. 이 장면을 목격한 예수는 그날 밤 자신이 당국에 체포되고 어려움을 겪을 때 이 제자들이 자신을 배신할 것임을 훤히 알게 된다.

그런데 예수는 느닷없이 빵과 잔을 차례로 들더니 이렇게 말한다. “먹어라. 내 몸이다” “마셔라. 내 피다.” 다른 말로 하면, “그래, 나를 다 먹어라. 배신해도 괜찮다. 우리가 그렇게 미약한 존재인 것을...”이 아닐까. 배신. 이런 거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인간은 미처 깨닫지 못하더라도 크고 작은 배신을 생존을 위해 무수히 한다. 배신. 명절 음식을 먹으며 나누기에는 부적절한 이 대화주제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곧이어 예수는 수제자인 베드로가 배신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유다만이 아니라 수제자 베드로까지, 모두가 배신할 것이다. 베드로나 나머지 제자들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마태 26:33, 35) 예수는 그들의 미약한 실존을 안다. 제자들의 배신에 관한 이야기가 가운데의 성만찬 이야기를 샌드위치처럼 감싼다. 친구들의 배신을 알고서도 자신을 다 내어준 성만찬이 새롭게 보인다.

사실 예수 자신도 약하다. 그는 사역 중에 여러 번 미약한 실존을 느꼈을 것이다. 맨 처음 가족을 떠나 사역에 나설 때,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중 사탄의 유혹 앞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새로운 가르침을 줄 때마다 사람들이 보내는 칭송과 인기 앞에서, 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해치려고 벼르는 권세자들을 생각할 때, 동고동락하며 가르친 제자들이 뜻을 이어갈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특히 절친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는 눈물까지 흘렸다(요한 11:35).

예수의 미약한 실존이 가장 드러난 곳은 십자가가 아니라 겟세마네일 것이다. 거기서 그는 온 몸으로 자신의 미약한 실존을 절감하며 몸부림친다. 그는 제자들 앞에서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것 같다.”라며 가슴에 담아두었던 약함을 드러낸다(마태 26:38). 그는 괴로운 나머지 바닥에 뒹굴 정도로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가능하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세 번이나 요청한다. 옆에서 함께 기도해주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친구들이나마 위안이 될 만큼 절박하다.

이랬던 예수가 부활을 한다. 온갖 고초가 이 약한 인간을 이기지 못한다. 그의 부활은 인간의 부활이다. 부활은 미약한 인간 실존의 극복이다. 세상의 힘있는 자들이 세상을 부활시키지 못한다. 결국 약자들이 세상을 부활시킬 것이다. 공기와 물을 맑게 하고 사막에 숲을 가꾸고 다함께 잘 사는 세상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한 가지, 예수 그는 미약한 인간이지만 다 주었다. 고난에도 배신에도 영광에도 자신을 다 주었다. 그렇다면 미약하나 다 주는 사람만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일까. 우선은 미약한 내가 나보다 크게 주는 것도 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쩌면 그러다가 부활에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부활절을 대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