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때를 알아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만큼,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새천년에 접어든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구시대 정신과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지도자로 나서기 때문에, 세상이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 늦기 전에 자기 자신은 물론, 어느 때인지도 모르는 지도자들은 마땅히 도태되어야 합니다.

안철수ㆍ박원순 바람이 신선한 충격으로 새로운 눈뜸을 확인시켜 주는 때에, 바다 건너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깔끔하게 드러낸 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배우이자 사회활동가인 맷 데이먼 Matt Damon이 타임지(2011.9.12)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리더들이 리드한다는 틀린 생각들을 합니다. 그들이 리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따를 뿐입니다. 모든 큰 운동은 바닥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왕조시대와 권위주의 시대를 극복하고 민주ㆍ민중 시대에 이르러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여론 형성과정도 전혀 새롭게 SNS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전개됩니다. 교회도 교권시대를 지나 하나님 백성 중심의 평신도 형성의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어디에서나 새로운 변화ㆍ새로운 운동이 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지도자들입니다.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되겠다는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들과 국회의원들이 어느 교수의 말처럼 ‘국민을 우롱하는 머슴’이 되고 있는 줄을 자신들만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 일컫는 목사들이 실제로는 신도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여기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위에 제왕적 권위로 군림하는 ‘일인체제’로 교회를 온존시키거나 강화시키는 시대착오적 현상을 이 밝은 시대에 목도하게 됩니다.

이와 대조적인 모습을 ‘안철수 바람’에서 본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 여겨집니다. ‘안철수 신드롬’이라고도 하고 ‘안철수ㆍ박원순 드라마’라고도 하는, 이 기이한 현상을 어찌 보는가가 관건입니다. 무엇보다도 제도권 정치에 대한 충격과 도전입니다. 이는 기성 정치로부터의 엑소더스를 상징합니다.

제도권 정치의 시각에서 보면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변호사가 행정 경험이나 정치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란 것이 정당의 틀 안에서 어떤 정치공학적 활동에 필요할지는 몰라도,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과 의미를 주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면,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오늘날의 정치 현실이 시민의 바람과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새 바람은 새 정치 지형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박원순 변호사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된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뜻을 바르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안철수ㆍ박원순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 자체가 지도력의 진정성, 시민들의 희망과 기대, 시대의 흐름, 시대의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 정치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은 여야를 막론한 기존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새 정치, 새 지도력 그리고 새 시대를 갈망하는 시민들이 변화를 향하여 바르게 분별하고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삼류 정치로부터의 탈출이 시작되었으니, 때를 분별하고 지도력의 변환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기필코 국민들에게 희망과 의미를 줄 수 있는 정치 현실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통 큰 양보를 한 안철수 교수나 자신에게 그다지 유리할 수 없는 야권 단일 후보 경선을 받아들이고 나선 박원순 변호사는 이미 리더십의 전환을 가시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 바람과 뜻을 존중하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앞장을 서서 리드하는 리더가 아니라, 시민의 뜻과 희망을 바르게 읽고, 그와 함께 시대의 흐름을 밝히 읽으며 ‘따르는’ 리더로서 우리 앞에 나선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리더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보인 것만으로도 큰 위안과 힘을 시민에게 선사한 셈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롬13:11) 우리 모두가 시대착오적 정치 미망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새 정치, 새 세상의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이루어내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