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 얘기 너무 재미있어요.”
“그 다음 이야기는 뭔가요?”
“선생님, 제가 그 다음 이야기 이어서
소설 써도 되나요?”
“오늘 읽은 책에서 떡볶이 나왔어요.
요리책 만들어도 되요? 우리 컵라면은 언제 먹나요?”
“앗싸! 1등, 다음 시간에 내가 빵 쏜다. 모두 기대해.”

우리 센터에서 책읽기 모임에 오는 아이들은 맛있는 것을 먹고 보드 게임도 함께 하는 기회를 갖는다. 책 읽고 아이들이 낸 퀴즈 문제를 풀고, 떡볶이, 라면, 핫케이크, 군만두, 물만두, 과자, 빵 등을 나눠 먹는다. 게임에서 진 아이들은 간식을 더 많이 받는다. 게임에서 이기고 퀴즈에서 이긴 아이들이 간식도 많이 먹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못 하거나 실수하거나 운이 좋지 않아서 기분이 상한 아이들은 간식으로 상한 마음을 달랜다. 3등 2개, 2등 1개, 1등 없음. 선생이 말하지 않아도 3등한 아이가 1등한 아이에게 간식거리 하나를 내민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장면을 잘도 찾아서 읽고 또 읽고 실제 상황처럼 목소리 흉내까지 내서 읽는다. 책읽기에 흥미가 없던 아이들도 1년 쯤 지나니까 재미있는 책 빌려줘서 고맙다고 하기도 하고 더 재미있는 책 골라서 소개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참 대단한 성과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사이에 학교 성적도 꽤 많이 올랐다. 컴퓨터 게임이나 닌텐도 게임을 하는 시간도 조금씩 줄었다. 나는 가능한 아이들에게 책 전체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 저학년은 2쪽 정도 고학년에게는 3~4쪽 분량의 재미있는 장면을 골라서 먼저 읽힌다. 내용이 길지 않으니까 돌아가면서 소리 내서 읽기, 다 읽은 후 떠오르는 단어 연상하기, 뒷이야기 생각해서 쓰기, 토론거리 찾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한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내가 갖고 있는 책을 빌려 달라고 하기도 하고 자신이 추론한 것과 이야기 내용이 맞는지 집요하게 묻기도 한다. 나는 미리 가르쳐 주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결과를 요약해서 발표하게 한다. 읽고 말하고 쓰면서 아이들은 어휘력, 독해력, 집중력, 사고력, 유추 능력,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도 함께 좋아졌다. 요즘엔 글 잘 쓰는 동화작가들이 너무 고맙다.

중학교 1학년인 현재는 요즘 고민이 많은지 잘 웃지도 않는다. 아빠는 알코올 중독이고 엄마는 아빠와 매일 다툰다. 중고생인 누나 둘은 고민을 잊고 싶은지 아니면 가족 일에 관심이 없는지 열심히 공부만 한다. 현재는 공부 잘하는 누나들과 공부 못하는 자신을 비교하는 선생님이 원망스럽다.

나는 현재에게 "속 좁은 아빠"라는 동화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 책을 읽고 우리는 주인공 정대면 씨의 가족과 일상에서 겪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온 동네 떠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술고래 정대면 씨, 동네에선 연예인보다 더 유명한 정대면 씨, 집에 와서도 냉장고 문 열고 오줌 싸는 정대면 씨. 우리는 정대면 씨가 왜 술을 많이 먹는지, 술을 끊을 수 있는 재미있고 기발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화책에서 가족들이 풀어간 방법도 이야기하고, 다른 저학년 집단에서 토론한 결과를 현재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하고 한 주가 지난 뒤 현재는 공부를 좀 잘 해보고 싶다고 했다. 과학만 80점 정도로 좋은 편이고 나머지 과목은 거의 50점 전후라고 한다. 자신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부모님 문제, 친구 관계, 컴퓨터 게임 시간 줄이기의 어려움보다는 자신이 누나들과 비교 당하는 성적 문제가 제일 큰 고민거리라고 했다. 성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잠시 고민하는 동안 현재에게 "기똥찬, 공부왕 되다" 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평소에 책읽기를 무척 싫어하는 현재가 그 책을 몇 시간 만에 다 읽었다고 한다. 현재는 지금 맛있는 책읽기에 조금씩 빠져드는 중이다. 나는 오늘도 ‘지혜의 등대’ 꿈마을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읽힐 책을 미리 읽느라 눈알이 빨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