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에 여러 해 동안 연재되었던 글을 모으고 다듬어서 엮어낸 책이『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이야기』입니다.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기쁨도 고마움도 큽니다. 그러나 더 진한 감동은 새로운 눈뜸을 경험한 일입니다.

평소에 성서를 읽으면서 성서 인물을 살필 때 대개는 단편적 이야기 속에서 개별적으로 대하게 되니까 일상에서 만나는 인물을 만나고 이해하는 수준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9가지 성격에 따라 각기 3명씩, 모두 27명의 인물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해 보면서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성서에서는 ‘누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새로운 눈뜸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흔히 성공한 인물이나 위인들을 크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눈높이는 성서 인물을 보는데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서 인물 이야기를 꿰고 보니까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 같은 큰 인물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다른 인물들 가운데 돋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세는 불세출의 영도자로서 하나님도 칭찬하신 인물이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분노의 격정 때문에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은 통일왕국의 위업을 이룬 대왕입니다. 그러나 탐욕과 오만 때문에 왕자의 난을 겪으며 말년에 비극을 맛봅니다. 바울은 신학과 가르침으로 초대교회의 기반을 다진 공이 큽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비판과 분노는 그에게 덫이었습니다.

이 출중한 세 인물의 공은 컸으나 격정이 분노와 오만과 탐욕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여호수아는 오랫동안 모세를 보좌하고 끝내 스스로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성실에 더하여 용기의 덕목을 살렸습니다. 요나단은 왕세자였는데도 다윗을 뒷받침하여 큰일을 하게 했을 뿐 아니라 제 몸처럼 사랑하여 아량과 무조건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지원하고 협력하며 인내와 관용으로 일관합니다.

이와 같이 가까이 지냈던 인물들을 예로 봤을 때 드러나는 진실 하나가 있습니다. 무엇이 되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에 정진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성서시대의 남성지배 문화 속에서 룻과 막달라 마리아는 이 점에서 정말 돋보이는 인물들입니다. 이방인으로서 홀로 된 여인이 가장 가련한 처지에서 겸손과 봉사로 ‘황무지의 장미꽃’처럼 지극한 사랑을 꽃피웠습니다. 소문난 여자로 소외당하던 여인이 부활의 첫 선포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도 사심 없는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에 누가 근접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 자신에게도 20여 년 전에 에니어그램을 접하면서 이와 같은 눈뜸의 경험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20년 전에 한스 웨버를 만나면서 성서연구에 대한 새로운 눈뜸에 이어서 얻은 소중한 것입니다. 이런 개인사적 경험의 큰 배경을 살피면, 금년 종교개혁기념일을 전후하여 부산에서 개최하는 세계교회협의회 WCC 제10차 총회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WCC 형성사와 교회일치운동의 배경을 보면, 세계대전 중에 기독청년들 가운데 성서연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형제들 사이에 총을 겨누며 전쟁을 하는데 대한 참회와 ‘하나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재발견하며 새로운 눈뜸을 경험했던 이들이 전후에 에큐메니컬운동의 지도자들로 힘을 합친 것입니다. 1948년 8월 23일에 창설된 WCC는 성서에 새로운 눈뜸을 얻은 사람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가능하였습니다.

어느 시대나 문화 속에서도 성서 앞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소명 앞에서 새로운 눈뜸을 경험하는 것은 개인의 변화는, 마침내 그런 경험의 공유가 사회와 역사의 변화로 이어지는 사건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가다듬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