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처럼 제 각각인 백성들을 규합하여 통일왕국을 세운 다윗 이야기입니다. 한 번은 셋째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권을 빼앗기 위해 반역을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화급하게 압살롬에게서 몸을 피한 다윗은 흩어진 백성들을 수습하여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합니다. 이때 다윗은 부하 장수들에게 어린 아들 압살롬을 해치지 말라고 심심 당부합니다. 자신에게 칼을 들이댄 못된 자식임에도 아버지는 그 자식의 목숨이나마 살려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압살롬은 진압군에 의해 도륙됩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성문에 걸터앉아 얼굴을 감싸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라고 울부짖으며 대성통곡합니다(삼하 18:33). 이를 지켜본 부하 장수들과 백성들은 반역자를 진압한 승리의 기쁨은 사라지고, 큰 죄를 지은 사람들처럼 사색이 됩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충성스런 장수 요압이 다윗에게 나아가서 왕이 지금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 지를 직언합니다. ‘왕께서는 자식이 죽었다고 통곡하며 왕궁에도 들어가지 않고 있으니, 목숨을 바쳐 왕의 생명을 구하고 나라를 국난에서 구한 백성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차라리 우리가 모두 압살롬에게 죽는 게 나을 뻔했습니다.’ 그때서야 왕은 자신이 지금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식의 처참한 죽음에는 공감하면서, 그 자식으로 인해 고통을 당한 백성들과는 공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평범한 집안의 아비라면 모를까,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할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통곡을 그치고 왕궁으로 들어가서 뒷일을 수습합니다.

이 고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빠질 수 없는 능력은 무엇보다 백성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입니다. 제 부모형제가 당한 슬픔이나 고통에는 오열하면서, 백성들이 당한 고통이나 슬픔에는 공감하지 못한다면 지도자로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난히도 열기 높은 금년 여름,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지 저도에서 ‘저도의 추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일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한 가족이 저도에서 보낸 추억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처럼 단란했던 가족이 비통한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분인가? 한없이 자애로운 분입니다. 그런 분이 북한 첩자의 흉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 오로지 국가만을 생각한 분입니다. 절대 굶주림에서 기적의 산업화를 이룩한 분입니다. 그런 분을 또 흉탄에 잃은 것도 분한 일인데, 독재자로 매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야속하기도 하고,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할 일입니다. ‘제가 어떻게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제가 반듯이 이뤄드리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한 나라의 통수권자입니다. 자신이 겪은 통한의 기억 못지않게, 아버지로 인해 고문을 당하고, 죽고, 고통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휴가지에서 돌아온 그는 아버지와 인연이 깊은 이들을 청와대 주요 자리에 앉혔습니다. 더 큰 충격은 유신헌법을 기초하고, 아버지 시절 두 차례나 청와대 비서를 지내고, 각종 공안 사건의 전면에 서고, 지방색을 부추긴 사람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앉힌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아버지의 열렬한 추종자들과는 공감하면서, 아버지로 인해 고통을 겪은 이들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자기 가족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은 결코 용서하거나 수용하지 않겠다는 신호로도 읽을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저 옛날 다윗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같은 철천지원수의 죽음에 대해서까지 그를 추종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생각하여 조가를 지어 부르며 함께 슬퍼했던 사람입니다(삼하 1:17-27). 비록 반역을 도모하기는 했지만, 참혹하게 죽은 아들로 인한 슬픔을 억제하고,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백성들의 고통에 공감했던 지도자입니다. 통일 왕국을 세울 수 있었던 다윗의 품새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저도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메시지를 보낸 대통령이 과연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내고, 멀고 험한 통일 기반을 닦을 수 있을지. 우리는 그가 자신의 가족사와 국가주의에 포박되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