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촛불 정국은 사람답게 사는 나라, 정의가 바로 서고, 저마다 꿈을 가꾸며 서로 돕고 신뢰하는 나라를 꿈꾸고 있습니다. 저 옛날 예언자 스가랴도 지금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꿈을 꿨습니다. 바빌론 포로에서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을 향한 설교에 그 꿈이 담겨있습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슥 14:8).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는다면, 지금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처럼, 자기들끼리 오붓하게 마시는 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예루살렘에서 솟은 물이 동쪽으로 흘러 이집트 사람들이 마시고, 서쪽으로 흘러 바빌론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폐쇄적인 유대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향한 의지가 담긴 말씀입니다. 이런 이유로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승리’를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솟은 물이 동으로 혹은 서로 ‘흐른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변화의 중심축, 변혁의 중심축이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질서의 발원지가 된다는 것이지요. 변두리에서 부스러기나 얻어먹는 이들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심이 된다는 야무진 꿈입니다. 그리하여 우뚝 솟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온 천지가 아라바 Arabah’ 곧 협곡으로 끊기고, 절벽으로 가로막힌 땅이 평지가 되어 물이 흐르고, 사시사철 양식이 풍부한 대초원의 이상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스가랴의 예언에서 세계 인류가 서로의 벽을 허물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미래 세계를 봅니다.

우리는 항상 ‘강력한 나라’를 꿈꾸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인격과 자율성이 억압된 강력한 나라는 지옥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개체간에 사랑과 우정과 신뢰를 기본 질서로 삼습니다. 내 가족만이 아닌 모든 인간과 생명체에 대해 깊은 연민과 존엄성을 지니는 걸 덕목으로 가르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각 사람의 영적인 능력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자기를 희생해서 타자를 살리려는 존재방식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희생하여 타자를 살리려는 존재방식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파하고 있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6).

그러나 한국교회의 현실은 너무나 다릅니다.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교조적으로 신앙을 전수받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배타성도 강하고, 공격성도 강합니다. 한 지체됨에서 신앙의 동력을 얻지 않고, 나와 다름에서 신앙의 동력을 얻는 성향이 강합니다. 특별히 북한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는 극도로 호전적입니다. 오로지 대적하고 압살하는 것만을 사명으로 여깁니다. 그리하여 내 안에서 저들은 죽은 자들, 죽어 없어져야 하는 자들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저주의 사슬을 치유받지 못하면 나라도 민족도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영적인 능력으로 이웃과 세계의 아픔을 어루만질 소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자기희생을 통해 분열된 세계를 치유할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지요. 국가의 무능과 태만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 어떤 이유로든 슬픔을 위로받지 못한 이들을 치유할 책임 또한 있습니다. 상처받은 이들의 치유 없이 공동체는 미래로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국가가 표창하고, 기념하고, 유가족들을 예우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나라가 제 역할을 못해서 희생된 사람들일수록 더욱 더 나라가 앞장서서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과오는 미래 담론을 앞세워 국가적으로 혹은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외면하거나 억압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국가는 세월호 희생자들처럼,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법제화된 제주4·3사건의 희생자들과 5·18희생자들에 대한 추모행사를 국가 기관이 앞장서서 훼방 놓는 유치함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위안부의 경우 나라 밖에서 치유받지 못한 이들을 나라 안에서 치유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그들을 미래로 향하는 장애물로 여겼고,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외교참사를 불러들이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행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국가와 사회는 공동체 안에서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치유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