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여든 살이 넘었을 노인이 힘겹게 몸을 닦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을 압축해 놓은 듯이 작고 주름진 몸을 가진 노인이다. 보호자 없이 혼자 온 것 같은데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에는 불안해 보인다.

다가가 등 좀 밀어드리겠다고 말을 건넸다. 생기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내가 다시, 내 등은 밀었으니 걱정 마시고 그냥 밀어드리겠다고 했다.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했다. 머쓱해서 내 자리에 와서 하던 것을 마저 하고 있는데 노인이 다가왔다.

“살이 아파서 그래”

노인이 슬며시 던진 말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때를 밀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아프다니, 도와주려고 다가갔던 내 선의가 무람하고 미안했다. 노인의 마음이 얼마나 부대꼈을까.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힘겹게 씨름하셨을 텐데 싶어 가슴이 저며왔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오랜만에 목욕탕에 함께 갔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혼자 집에서 하면 된다고 극구 사양하시다가 할 수 없이 따라나섰던 어머니, 옷 벗는 게 시간 걸리니 한사코 나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무심결에 탕 안으로 걸어오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에이었다. 유난히 가슴살이 쪼그라들어 보기에도 민망했던 그 모습. 어머니 등을 밀면서 세월만큼이나 살이 야위었음을, 등을 문대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름 어머니는 적당한 살집을 가져 보기 좋았었는데 어느새 살 마른 몸이 되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때 가끔 등을 옴싹거렸던 어머니, 아마도 살이 아파서 그랬었나보다. 자식에게 당신의 몸을 보여주기까지 망설였을, 그날의 어머니를 보며 어렴풋이 지상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프게 받아들였다.

나도 젊어서는 병원신세를 별로 져 본적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먹을 약이 늘어간다. 늙는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젊어서 무리하게 산 것이 나이 들어서 여기저기 좋지 않아져 연근처럼 뼈에 구멍이 숭숭 나고, 마음에도 공동이 생기는 거겠지.

얼마 전에 중학생들의 의식 조사에서 노인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설문에 대다수가 ‘쓸모없는 사람’ ‘밥만 축내는 사람’ ‘할일 없는 사람’으로 대답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자기들이 존재하는 걸 까마득히 모르는 아이들, 그분들의 헌신으로 우리 자손들이 잘 살 수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그들을 잘못 기른 우리들의 잘못이 크다. 과정보다는 성과 중심의 삶을 최상으로 여기는 세태에서 그들이 무얼 배울 수 있단 말인가. 한번쯤이면 자기를 돌아보도록 안내하는 어른들의 말 한마디가 지친 삶을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는데.

물론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노인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아파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스템이 기계화 되어 적응하기 어려워 뒤쳐지는 늙음이 어찌 서글프지 않으랴. 너무 외로워서 병원을 다닌다는 어느 할머니의 횅한 눈빛이 서글프다. 그나마 의사는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말을 들어준단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거나 공감하기에는 각자의 마음이 너무도 멀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고 베드로가 고백하였다. 그 누구든 흐르는 시간을 이길 수가 있을까. 돈 있는 자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금고를 채워가는 데, 과연 그들은 죽지 않고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늙음과 죽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한없이 어리석은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늙는다는 건 오늘을 잘 산다는 거다. 적어도 자기의 유익만을 좇지 아니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더불어 함께 걸어간다는 의미이다.

눈앞에 졸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노인일지라도 함부로 보지 말길, 이 땅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길을 걸어가는 존귀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