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미미 언니!
알아듣겠어?
시를 배우고,
울먹해진 목소리로 시를 읽어 주신 국어
선생님과 헤어져 집에 왔을 때
삼촌이
처음 보는 강아지를 안고 있었어.
술 취해 돌아오다가
아파트에서도 키울 수 있다는
아메리칸 코커 스파니엘이라는
이름도 길다랗고 양쪽 귀도 큰
개 한 마리
안고 온 거였어.

삼촌은 그놈에게 미친 거 같았어.
병원에 다니며 약 사 먹이고
미용실에 다니며
모양도 내고
개 껌도 사 주고, 장난감도 사 오고
개집도 늘리고, 하루걸러 목욕
데리고 다니고, 데리고 자고
개 카페에 가 개 친구도 만나게
해 주고,
운동도 시키고, 화실에도
데리고 가고
사진도 찍어 주고, 그림도 그렸어.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왔어.
백구를 주었다는 삼촌 친구가
백구의 안부를 묻는 모양이었어
…….

그래 어떻게 지내?
걱정 말라고.
갈비탕 사먹고, 그 갈비뼈 갖다주고,
아침저녁 운동 시키고, 오줌 똥 뉘고 그런다.
너나 제대 말년 잘 보내, 사고 치지 말고.
카투사 군기라고 방심 말라고…….
그런데 뭐라고?
지금 뭐랬어?
우리 집에?
백구 보러 온다고?
언제?
정말?

삼촌은 그놈 얘기를 했던 거야.
그 녀석 얘기를 백구얘기 처럼 했던 거지.
백구는 이미 없는데…….
그 전화를 받고 나서 삼촌은 그놈을 버렸어.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그래서 그놈이 내 차지가 된 거지.
삼촌의 그 카투사 친구는 종내 오지 않았어. 삼촌이 뭐라고 말했겠지 뭐. 죽었다던가, 도망쳤다던가, 무슨 애길 했겠지 뭐. 여하튼 숨기려던 거짓말은 탄로 난 셈이니까.

그놈은 그러니까 삼촌 품을 떠나 우리 곁으로 왔어. 처음엔 떼룽떼룽하시던 엄마나 아빠까지 조금씩 반하기 시작한 거야. 그 ‘조금씩’이 중요해.
조금씩 빠지다 보면,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깊이 빠져들거든.
풍덩! 한 다음에야 알아차리지만 그땐 이미 헤어나기 힘들거든.
이 녀석은 앉는 자리도 항상 상석이야. 자는 자리도 가장 좋은 자리야.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아. 자기한테 잘하는 사람을 아주 잘 알고, 그 사람 엉덩이 밑에서 잠을 자. 밥을 먹을 때도 그 사람 무릎쯤에 다가앉아 빤히 쳐다본다고. 치사하게, 가장 치사한게 남 먹는 거 쳐다보는 거잖아?
그런데 지금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지? 백구, 그래 백구!
그때 넌 어디에 있었지?

다시 이상한 방,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별 단 개 거기 서 있어요.
홀로 우뚝 서 있어요.
그 때 내가 어디 있었냐고?
별 단 개가 말했어요.
도망쳤죠.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 없더라고요.
별단 개가 말을 이었어요.
그 마을의 개 냄새, 개 소리가 견딜 수 없었어요.
나도 같은 개지만, 그 냄새,
그 소리들,
생각만 해도 진저리쳐져요.
별 단개가 부르르 떨며 말했어요.(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