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요. OO 이모랑 OO 삼촌이랑 우리 집에 왔었는데……” 볍씨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이모나 삼촌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수를 헤아려보면, 볍씨 부모님들은 형제가 열 명도 더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 딴에야 형제들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지요. 볍씨에 지내면서 친구들이나 언니 오빠들의 엄마나 아빠를 이모, 삼촌이라 부르다보니 그리 된 겁니다. 어머니들끼리 서로의 이름을 넣어 “OO이 언니”, “OO이”라 부르고, 아버지들끼리 역시 “OO이 형님” “OO이”라 흔히 부르고, 자연스럽게 아이들과의 사이도 그렇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아이 이름을 넣은 “OO이 어머니”, “OO이 아버지”라는 호칭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서로의 언니 동생, 형님 아우가 되는 일이 삽시간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볍씨 부모님들은 시시때때로 만나고 몸으로 부대끼고 줄기차게 이야기합니다. ‘논두렁’, ‘나뭇잎’, ‘장작불’과 같은 이름을 붙인 여러 반 모임, 전체학부모모임인 거름회의, 이런 저런 소모임, 학교 큰 행사들을 꾸리는 준비팀 모임, 이렇게 모임도 많습니다. 어떨 땐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볍씨 사람들 얼굴을 보게도 되지요. 이런 모임들 속에서 함께 자기 생활을 나누고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공부를 하고 토론을 하며 서로의 성장을 북돋웁니다. 봄,가을 공사 때면 같이 땀 흘리며 일하고 간간히 걸쭉한 막걸리를 주고받으면서 볍씨를 일굽니다. 이러다보니, 처음 볍씨를 찾아오신 부모님께는 이런 말씀을 꼭 드리곤 합니다. 볍씨에 아이가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님들도 학교에 다니게 되신다고요.

함께 사는 맛. 현대 사회에서 또 도시 속에선 좀처럼 맛보기 힘든 것들. 삶의 지향이 비슷하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든든함, 마음이 짝짝 맞고 서로 통할 때 느끼는 즐거움, 고민을 털어 놓고 얻는 위안, 다시 꿈을 꾸며 느끼는 설렘, 소소한 생활을 공유해가는 정겨움, 끈끈한 유대감, 이런 것들 덕분에 생활이 훨씬 인간다워지고 따뜻해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매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만나고 소통하는 접점이 많은 만큼, 그동안 내가 고수해온 생활양식,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아이를 키워가는 교육관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오래 묵어 굳어진 것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일상에서 뜻밖의 재미를 누리기도 합니다. 바로 며칠 전 일입니다. 한 부모님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셨어요. 고향 섬 근처에서 홍합과 석화를 많이 캐오셨다며. 해질 무렵 여덟 식구가 학교에 모였습니다. 밥 짓고 탕을 끊이고 불을 지피고 엄지손가락 2개 만한 홍합살을 베어 먹으며

“이야, 이렇게 큰 홍합은 처음 보는데~.”
“우린 아무래도 밥상 공동체같어. 뭐 먹을 게 있으면 이렇게 같이 먹으려고 하니.”
뒤엉켜 지내는 일이 녹록치만은 않습니다. 아이들 관계가 편하지 않을 땐 부모님들 사이에도 미묘한 갈등과 긴장이 생기고, 이상이 현실에 계속 가로막히면서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 식구에 대한 소문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널리 널리 퍼져나가서 당황하기도 하고, ‘대안학교 학부모는 이럴 거야.’라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실망하기도 하고, 같은 꿈을 꾸는 줄 알았는데 막상 확인해봤더니 서로 너무 달라서 놀라거나 불신을 키우기도 합니다. 학교 안에서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주변인으로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발성과 책임의 문제를 논하게도 되고, 입장 차이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들이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우리가 과연 어디까지 함께 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들입니다. ‘우리 공동체 맞아? 공동체가 도대체 뭐지? 우린 어떤 공동체가 되려고 하는 거지? 우리가 그런 공동체가 될 수 있어?’ 자조 섞인 물음들이 이어질 때도 있고요.

공동체. 완성품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과정. 우린 10년, 20년 뒤에도 지금처럼 때론 기뻐하고 때론 힘들어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세상이 변해갈수록 공동체를 꿈꾸고 공동체로 산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힘내고 다시 도전할 볍씨를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