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받던 제자 요한

요한의 이미지는 극적인 사건으로 강렬하게 기억된다. 예수가 배반당할 것을 예고하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다.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요13:23).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요13:24).

요한은 시몬 베드로까지도 인정할 만큼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은 사랑받는 것, 특히 선생님이나 지도자 같은 어른이나 힘있는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요한의 삶을 들여다보면, #2번 유형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제자의 한 사람인 요한은 예수의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중요한 대목마다 그의 형 야고보와 늘 함께 한다. 당시 흔한 이름들 가운데 사도 요한은 ‘사랑받는 제자’ Beloved Disciple로 잘 알려졌다. 그의 형 야고보는 ‘큰 야고보’ James the Greater라 불리웠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가운데 또 다른 야고보가 있었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여자들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도 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고 살로메도 있었다”(막 15:40)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작은 야고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살로메’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는데, 동방교회 전승에서는 세베대의 아내 곧 ‘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로 전한다. 야고보와 요한은 늘 함께 있는 듯이 보인다. 부름을 받은 때에도, 중대한 사건 현장에서도 함께 있다.

#2번 유형은 다른 이들과 함께 있는다. 혼자 나서서 무슨 일을 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역할 하도록 도우며 뒤에서 협력하는 형태를 보통 취한다. 때로는 이런 모습이 ‘뒤에서 조작 또는 조종’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기독교 전승에서 요한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더불어, 제자들 가운데 요즘 말로 삼총사, ‘Big Three’로 나타난다. #2번 유형은 그러잖아도 파워에 가까이 있으며 파워가 있는 사람의 측근이 된다. 주로 막후에 있으나 핵심 그룹에 속하기를 잘 한다. 중요한 장면마다 이 삼총사는 예수와 동행하며 증인이 된다.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막 5:37), 다볼산에서 영광 가운데 변모하실 때(막 9:2),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막 14:33)처럼 중대한 사건에는 어김없이 예수가 그들 세 사람만 따로 동행한다.

최후의 만찬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도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 만 보낸다(눅 22:8). 예수가 붙잡혀 갈 때에도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요 18:15)고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만 밝히고 있다. ‘또 다른 제자’는 요한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도 남자들은 대부분 달아나고 없었다. 공관복음서의 기록도 여자들이 멀찍이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오로지 요한복음서만이 십자가 곁에 요한이 있었던 것을 보고한다.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은 사랑 받는 것에 대한 관심도 높지만, 남의 필요를 보면 자기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도우며 봉사한다. 더욱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순교자적인 특성을 발휘한다. 고난의 현장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견디는 모습을 요한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지위를 바라는 요한

에니어그램으로 본 인성은 저마다 격정에 사로잡힐 때 자신의 특징을 가장 뚜렷이 드러낸다. 요한 같은 #2번 유형의 격정은 자만 또는 자랑이다. #2번 유형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한 양가적 관계 속에서 자랐다. 프라이드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필요나 욕구는 인정하지 않으며, 마치 그런 것은 없는 듯이 산다. 반면에, 남의 필요는 재빨리 알아본다. 따라서 봉사하거나 잘 주고 돕는다.

상대방의 필요를 발견하고 돕는 데서 자신의 우월성을 느끼며 자만할 수 있다. 자신의 필요를 받아들이면 상대방과 같아질 수 있고, 따라서 열등한 자리에 서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격정이 작용하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것이 심해지면 허영에 사로잡힐 위험마저 생긴다.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나 지배욕이 작용한다. 자신이 남을 돕고 봉사하고 보살핀 데 대하여 반응이 없거나 보상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공격적이며 버럭 화를 내게 된다. 그때까지 잘 돕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2번 유형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8번처럼 강한 지배자로 등장하기 쉽다.

그럴 때는 파워를 지향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요한은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로서 가만히 있어도 최측근이다. 그러나 남을 의식하고 경쟁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조급해지면서 지위를 추구하게 된다. “세배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시기 바랍니다’(막 10:35).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막 10:37).

이렇게 노골적으로 지위와 파워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열 제자가 이것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에 대하여 응답하는 과정에서 예수가 이미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고 설파하였는데도 모든 제자들이 똑같이 예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는 12제자 모두를 ‘곁에 불러 놓고’ 권력과 친교와 봉사에 대하여 중대한 가르침을 준다. 요한의 요구에 의하여 촉발된 분위기를 바로잡음과 동시에 봉사에 대하여 누구보다 민감한 요한을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게 섬김의 도를 가르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막 10:45)고 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천명한다.

남에게 잘 주고 도우며 봉사하는 #2번 유형이지만, 자기의 사랑이 인정되지도 보상되지도 않는다고 느낄 때, 특히 자신의 사랑과 봉사가 무시된다고 느낄 때 순간적인 분노와 공격성이 자타가 놀랄 정도로 나타난다.

야고보와 요한에게서도 이런 모습이 나타난 때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 굳히시고 심부름꾼을 앞서 보내셨다. …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였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평소에 사랑과 봉사는 남보다 잘 하는 #2번 유형의 요한이 더욱이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이지만, 격정에 사로잡히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며 순간적으로 감정이 치솟아 분노를 느끼며 이렇게 공격성을 나타낼 수 있다. 봉사 잘 하던 모습을 순간적으로 뒤집어엎는 것 같다. 감정이 예민한 만큼, 감정을 순화시키고 부드럽게 해야 할 필요를 더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