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볍씨학교에서 제일 어린 사람들이 밥과 반찬을 나누는 자리. 아이들 앞에 놓인 접시에는 아침에 제 손으로 지은 잡곡밥과 밥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나물 반찬 2가지, 도토리묵야채무침, 어제 미처 다 먹지 못해 남겨 두었던 새우 마늘쫑 볶음이 담겨 있습니다.
“딩-”
한 아이가 조그마한 손에 경쇠를 들고 소리를 울려냅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모두 조용해질 때 즈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바람과 비와 구름과 해님의 힘으로 자란 음식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밥 한 톨도 소중히 여기고 꼭꼭 씹어 먹겠습니다.……”

볍씨학교는 2001년 광명YMCA 회원들이 지역사회의 자치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건강한 교육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시작한 대안학교입니다. 광명시 옥길동에 터를 잡고, 올해에는 8살 1학년 아이들부터 16살 9학년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까지 10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이가 ‘밥가 시작’ 하면, 김지하 시인의 시 ‘밥은 하늘입니다’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를 모든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부릅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서로 나누어 먹는 것. 정말로!”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은 밥을 내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내 접시 위에서 옆에 앉은 친구가 좋아할 만한 반찬을 집어서 건넵니다.
“맛있게 먹어.”
“응. 고마워.”
이제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친구들과 그 날 있었던 이야기, 웃긴 이야기, 엄마 이야기, 새로운 놀이 이야기, 재미난 퀴즈,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은 밥알 하나 남김없이 끝까지 먹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아이는 일어나 밥 지을 때 받아둔 쌀뜨물과 맑은 물에 차례로 설거지를 합니다. 그리고 행주로 물기를 말끔히 닦아내고 원래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그릇과 수저를 되돌려 놓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볍씨 어느 방에서나 날마다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내 앞에 온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의 겉모양이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허투루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 ‘생명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제 빛깔을 내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배웁니다.

작년 초 어느 기관에서 대안학교에 대해 연구하던 중에, 아이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 기관의 선생님과 아이가 만났습니다. 선생님은 아이한테 볍씨가 어떤 곳이냐 물으셨습니다. 아이는 대뜸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이요.”
그럽니다. 볍씨에서 무엇을 배우든, 무슨 이야기를 하든, 어떤 일을 벌이든, 우리들의 중심을 지키려고 챙기는 말이어서 그랬나 봅니다. 학교의 철학은 소소한 일상 속에 담기고 실험되어야 합니다. ‘볍씨’라는 학교 이름부터가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학교의 중심 철학이 응집된 말이지요. ‘생명’이라는 말에서 생명의 원천이 되는 ‘씨앗’을, 씨앗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먹는 쌀을 연상하게 되면서, ‘볍씨’라는 이름을 선택했던 것이니까요.
아이들한테 생명이란 ‘추상적인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존재로 새겨져야 합니다. 나 자신. 나랑 쿵짝이 잘 맞는 친구. 내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친구. 함께 붙어사는 언니들과 동생들. 자투리 종이 조각. 새끼손가락 길이만 해진 연필. 해묵은 책상. 학교 다니는 길목에 살고 있는 강아지 아찌. 우리의 손길이 닿아 채소를 키워주는 밭. 봄이면 꽃마리와 꽃다지와 냉이와 망초 그밖에 무수한 풀꽃들을 내는 흙. 아래학교 지킴이 은행나무. 제법 훈훈해진 공기. 깔깔거리고, 눈물 뚝뚝 나게 슬프고, 평화롭고, 화나고 하는 변화무쌍한 마음. 재미있는 것을 할 때면 쌩 하고 달려가지만 이야기가 지루하게 길어지면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이모 삼촌들이 힘을 합쳐 만든 학교 구석구석.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 사이. 이 모든 것이 온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귀한 생명.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고 기운을 내뿜고 있고 서로 작용하고 있는 생명은 아주 작은 것, 평범한 하루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 순간 거기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에서 배움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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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학교는 2001년 광명YMCA 회원들이 지역사회의 자치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건강한 교육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시작한 대안학교입니다. 광명시 옥길동에 터를 잡고, 올해에는 8살 1학년 아이들부터 16살 9학년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까지 10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