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뭇 다른 기도가 있다. ‘예수기도’이다. 청원으로만 끝나곤 했던 나의 기도를 변화시켜 준 기도이기도 하다. 목회 초년생이었을 때 선배 목사님들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목도 아프고, 교인이 몇 명 되지도 않으니 부르짖어 기도할 내용도 없었다. 기도는 고통이었다. 부르짖는 것은 내 정서하고도 어울리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기도를 고통스럽지 않게 해 준 기도의 방법이 ‘예수기도’였다. 내 영적 스승이었던 분이 가르쳐준 기도였다.

동방교회의 헤시카즘 영성의 중요한 도구가 ‘예수기도’이다. 헤시카즘은 휴식, 평정을 뜻하는 그리스어 'hesychia'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헤시카즘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평정으로 이끄는 방법이다. 이 헤시카즘은 사막교부로부터 시작되었고, 아토스 산과 수도원에서 발전되었고, 19세기 러시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책은 이런 헤시카즘이 꽃 피었을 때 어떤 이름 없는 순례자가 쓴 책이다. 배경은 아마 19세기 말로 본다. 이 책에 ‘크리미아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때 쯤으로 추측을 한다.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번역도 유려하다. 문제는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예수기도’의 필요성에 나도 공감하느냐 하는 것이고, 또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실천하게 되면 영성의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한 젊은이가 어느 날 예배를 드리려 교회에 갔다. 그때 성서 봉독자가 <데살로니가 전서> 5:17절을 봉독하는데, 그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박혔다.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것을 가르쳐줄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때 많은 설교자들은 기도란 무엇인지, 왜 기도를 해야 하는지, 기도의 열매는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지만, 어떻게 성공적인 기도를 할 수 있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18쪽). 순례자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방법을 알기 위하여 길을 떠난다. 어느 수도원에서 한 스승을 만나게 되고, 그 스승으로부터 ‘예수기도’를 소개받게 된다.

스승은 “쉬지 말고 드리는 내면적 기도, ‘예수의 기도’는 입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호(거룩한 이름)를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동시에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어느 장소에서나 어느 시간이나, 심지어 자면서 까지도 그렇게 하면서 계속 마음에 그가 임재하기를 빌고 그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기도문은 이렇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누구나 이 기도를 습관처럼 하게 되면 큰 위로를 받게 되고 이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할 마음이 저절로 생기지요. 그러다가 결국은 이 기도가 없이는 못살게 되고 기도가 저절로 흘러나오게 되는 겁니다.”(31쪽)고 가르쳐 준다.

스승은 마음의 태도와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필로칼리아>에 나오는 ‘신 신학자 성 시므온’의 글을 읽어 준다. “혼자 조용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으라.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으라. 부드럽게 숨을 쉬면서 마음의 눈으로 그대의 심장을 들여다보라. 그대의 마음, 곧 그대의 심장으로 가지고 가라. 숨을 쉬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를 되풀이 하라. 입술을 움직여서 해도 좋고, 그냥 마음속으로만 해도 좋다. 다른 모든 생각은 다 씻어 버리도록 하고, 평안한 마음과 인내심을 갖도록 하라. 이 일을 자주 반복하라.”고 한다(33쪽).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순례자는 하루에 3,000번, 6,000번, 12,000번씩 기도문을 외웠더니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도를 할 수 있는 단계에 까지 오게 된다. 순례자의 가슴속에 말 할 수 없는 홀가분함과 자유, 위로,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순례자의 입술을 빌어 예수기도가 주는 효과(95쪽), 환상에 대한 경계(213쪽), 심장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209쪽)을 말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만으로 예수기도가 무엇인지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승으로부터 예수기도를 소개받은 순례자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자신이 예수기도를 실천함으로 자신의 내적인 풍성함과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예수기도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기도문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귐을 구하지 않고 단순히 주문을 반복하여 외우기만 하면 신비한 능력이 나오거나 성공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기도를 자기 확장의 수단으로 삼는 한국교회의 풍토 속에 잘못하면 예수기도가 자기 욕망을 부채질하는 주술이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예수기도가 불교의 염불이나 동양종교의 만트라와 비슷하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예수기도는 4세기 사막교부들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많은 교부들이 언급한 기도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오히려 예수기도가 동양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동양종교가 예수기도 를 받아들여 망가뜨렸다고 한다(130-131쪽). 모든 종교에는 신적합일을 추구하는 자기 나름의 영적수련방법이 있다. 그 외형적 모습이 비슷한 경우가 많이 있다. 추구하는 본질이 다르다면 외형적 방법이 비슷하다고 해서 배척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나치게 신비적인 이야기나, 우리 개신교 전통과는 낯선 모습들을 보기도 한다. 익명의 순례자가 살던 시대가 우리와 같은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과 신앙의 전통이 개신교 전통이 아니라 러시아정교의 전통위에 서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성경보다 더 빈번하게 언급되는 책이 있는데, <필로칼리아> (The Philokalia, φ?λοκαλ?α)이다. 이 필로칼리아는 아름다운 것,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필로칼리아는 4세기부터 15세기까지 정교 전통에 속한 영적 대가들이 저술한 글들을 모은 영적보고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말 번역도 나와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욕망의 확장을 위한 울부짖음으로만 가득한 기도소리에 싫증이 나, 더 이상 기도가 하기 싫은 분들에게 이 책은 기도의 기쁨과 신비를 회복시켜 주는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순례자의 길이 아름다운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도,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수의 기도> 이름 없는 순례자 씀, 오강남 역, 대한기독교서회.(같은 번역본으로 ‘순례자의 길, (은성출판사) ‘이름 없는 순례자’(가톨릭출판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