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3월은 한 해의 시작이다. 입학과 진급으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라 학생들의 마음은 새해만큼이나 들뜨게 된다. 새로 만나는 선생님, 함께 할 친구들이 누구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자신의 한 해 학교생활은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아울러 새 생활에 대한 적응도 쉽지 않은 시기라 일 년 중 가장 더디게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듯 설렘과 기대로 맞이하는 신학기를 유난히 힘들게 시작한 아이가 있었다.

가현이(가명)는 농사짓는 아버지와 정신질환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어머니 사이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외롭게 성장한 분이고, 어머니는 어린 시절 부친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분이다. 따라서 가현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으며, 아버지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가야 했기 때문에 자녀들의 양육에 제대로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가현이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효심을 보일 때도 있고, 순박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는 하나 부모님의 정신적 지지가 부족하다보니 자연히 정을 그리워하며 성장하게 되었고, 뭔가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집착의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

학기 초 가현이의 희망에 의해 상담을 시작하였다. 처음 몇 차례의 상담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되는가 싶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가현이는 결석을 하며 부적응 행동을 보이게 되었다. 친구들을 통해 알아 본 결과 컴퓨터 게임에 재미를 붙여 PC방에 자주 다닌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내에 있는 PC방을 돌며 가현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현이를 만나면 분위기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가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며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 만남이 있고 나면 학교에 나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였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가현이의 마음은 다시 PC방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이러한 방황과 설득의 과정을 거듭하면서 때로는 실망스럽기도 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나의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한 때는 정말 가현이가 학교를 그만 두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를 느끼기도 하였다. 과연 상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드는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현이가 변화되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모두가 이제 정말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때 가현이가 학교로 돌아왔다. 결석과 출석을 번갈아 하며 학교에 제대로 안 나오기 시작한 지 석 달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공들이며 기다린 것이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던 것이다. 가현이는 컴퓨터 게임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고, 예전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부모님도 생각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학업에 관심을 보이며 수업 시간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1학기 때는 수업 시간에 열의를 보이지 않아 선생님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2학기가 되면서부터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생활하여 선생님들의 칭찬도 많이 들었다. 그럴수록 가현이의 생활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얼굴도 환해졌고, 말수도 많아졌고, 아버지도 잘 도와드렸고,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들과도 잘 지냈다. 어머니도 극진히 보살펴 드렸다.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도 신나게 어울렸다. 언제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냐싶게 가현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가현이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바쁘신 아버지, 자기 생활도 제대로 꾸려가지 못하시는 어머니, 턱없이 부족한 학습능력, 경제적 어려움, 게임으로부터의 유혹 등은 계속되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가현이의 마음은 180도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록새록 느끼게 된다. 아직은 바람도 차고 흔들거리기 쉬운 때이지만 용기를 내어 얼굴을 내밀고 우리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 봄꽃처럼 위기의 아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디디며 힘들고 어려운 방황의 시간들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려 한다. 가현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인생의 모진 혹한 속에서 아파하며 괴로워할지 모른다. 때로는 방황의 늪으로 빠져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자신의 삶을 아끼며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가현이에게처럼 새봄의 희망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봄꽃 닮은 가현이에게서 본 희망을 나누고 싶다. 또 다른 위기의 아이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