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강추위를 겪었습니다. 기후변화로 북극에 머물러 있어야 할 찬 공기가 제트기류를 타고 내려와 한반도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는 분석입니다. 기류가 문제입니다. 북극에서 내려온 찬 공기는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회자하던 말문을 단숨에 봉해버렸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를 얼어붙게 하는 것은 기류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삶을 극단으로 내모는 고약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아집과 독선의 기류입니다. 유독 박근혜 정부는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 국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힘겹게 사는 이들의 삶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대북 관계도 북한의 고립 외에는 달리 정책이 없어 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질병, 가난, 상실, 고독, 실패와 같은 곤경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곤경 자체보다 그것들로 인한 사회적 관계가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곤경에 처한 이들이 사회적으로 극단의 고립에 몰리게 되면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자주 일어나는 젊은이들의 자살 행위나, 부모가 어린 자식을 학대 폭행 살해 유기하는 일도 그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일이 보도될 때마다 ‘어찌 저럴 수 있나’, 하고 혀를 찹니다. ‘나약한 젊은이’를 탓하거나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매도하기도 합니다. 개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의 기류가 문제인데, 그 책임은 ‘개인사’로만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극단의 고립은 개인이든 국가든 그런 처지의 사람들에게 독약이 아니라 폭탄입니다. 독약은 마신 사람만 죽지만, 폭탄은 함께 사는 사람들 모두를 죽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집착도 그래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 유대 땅에 남편이 죽고 어린 두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미망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은 남편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선지학교 생도였습니다. 생도들은 영적인 생활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 생업은 남에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런 남편이 죽자 미망인에게는 빚만 남게 됩니다. 빚쟁이들은 당장 빚을 갚지 않으면 어린 두 아들을 종으로 끌어가겠다며 윽박질렀습니다. 다급한 처지가 된 미망인은 남편의 스승인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어찌했으면 좋겠냐며 눈물로 호소합니다. 미망인의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던 엘리사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 길을 찾기 시작합니다. 미망인의 두 아들을 시켜 동네에 나가 빈 기름병을 빌려오되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빌려 오게 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집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남은 기름을 빌려온 빈 병에 계속 부으라고 합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병 남은 기름으로 빌려온 모든 빈병을 가득 채우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망인은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기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서도 일어납니다.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한 기적 말입니다(요 2:1-11).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마치 도깨비방망이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두 기적이야기는 생명의 기운이 고갈됨으로 인해 더 이상 삶을 지속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두 이야기가 기적의 형식을 취한 것은 생명의 기운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두 이야기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기적입니다. 미망인과 두 아들이 이유를 묻지 않고 예언자에게 순종한 것이나, 하인들이 이유를 묻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나 맥락은 같습니다. 삶을 유지시켜주는 생명의 기운이 고갈되거나 소멸된 극단의 ‘세계’에 맞서 살아나는 기적은 공동체의 열망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안 됩니다. 곤경에 처한 이들이 연대하는 데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교회가 할 일이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지향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교인관리 차원에서 벌이는 일종의 종교 서비스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삶의 극단에 내몰려 기진맥진한 이들과 연대하는 일입니다. 물론 연약한 이들과의 연대를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게 한국 교회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연약한 이들과의 연대야말로 삶을 극단의 고립으로 내모는 기류를 막아내고,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