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고릴라 / The invisible gorilla>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서두에 소개하면서 서문을 시작한다. “세상에서 아주 단단한 것이 세 가지 있다. 강철, 다이아몬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식이다.” 나는 이 말에, 특히 ‘자신에 대한 인식’의 단단함에 동의한다. 자신에 대한 인식이란, 곧 자기 확인이 아닌가. 특별히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지기신뢰, 자기확신 과 동의어임이 분명하다. ‘긍정의 힘’ ‘잘되는 나’와 같은 종류의 책들이 신앙서적(?)의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하물며 ‘믿음대로 될지어다’를 주문(?)처럼 외쳐대는 사람들이야 다른 가능성을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져가고 있다. 속이고 속는 세상이다. 마술사 최현우의 현란한 손놀림 앞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만큼 정확하고 분명한 게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옛날부터 다툼이 생기면 꼭 나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네가 봤냐?’ ‘네가 들었냐?’ ‘그 자리에 있었냐?’ 그런데 상대방이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직접 들었다’ ‘있었다’면 게임은 끝이었다. 그래서 함께 있던 사람이 자기와 다른 말을 하면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니 저 친구가 거짓말을 하다니……’

그런데 이러한 보편적 확신들이 잘못된 것이라면!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은 것이 거짓이거나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어쩌면 주관적인 체험까지 객관화, 보편화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신령한(?) 신앙인들일수록 그러한 생각은 꿈에도 해 본적이 없을지 모른다!

이 책은 이러한 우리의 보편적 확신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러한 확신들이 얼마나 오류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서문부터 흥미진진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그동안 전혀 의심해보지 않고 굳게 믿었던 수많은 상식과 검증받은 지식들이 사실은 완전히 잘못된 정보였고 허구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내보여주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당신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정말’이라는 커다란 놀라움을 몇 번이고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부족하기 짝이 없는 기억력과 한계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주의력, 실력에 반비례하는 자신감, 주변 상황과 맞물리거나 개인적인 경험만으로 혼자 사실처럼 믿게 되는 부족한 지식, 분명 엄청나다고 믿었으나 그 진실은 알 수 없는 잠재력을 인식하게 되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지나친 자기확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고릴라가 등장해 가슴을 두드리는데도 못 보는 학생들, 바로 옆에서 집단 구타당하는 동료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찰, 만인이 주시하는 경기장에서 감독에게 목이 졸린 선수를 다수가 보지 못했다는 증언들…….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가능할까? 저자들은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착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착각을 가져오는 불완전한 우리의 인지능력에 대한 한계를 6가지 착각으로 분류해 실제 사례를 통해 상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우리의 직관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는지 알려줌으로 우리의 확신이 얼마나 잘못된 것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① 주의력 착각 (고릴라가 나타났는데 보질 못하는!),
② 기억력 착각 (과연 내 기억력은 신뢰할 수 있을까!)
③ 자신감 착각 (놀랍게도, 실력이 낮으면 자신감이 높고 실력을 쌓아갈수록 자신감이 줄어든다는 학술적 증거가 나왔다!)
④ 지식 착각 (왜 내가 산 주식은 다 떨어지고, 내가 팔면 상한가를 친단 말인가!),
⑤ 원인 착각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⑥ 잠재력 착각 (매일매일 닌텐도 두뇌 트레이딩으로 머리가 좋아진다니!)이 바로 그것이다. 이 착각들이 한 장 章을 이루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심리적 오류와 오해를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이 책은 단지 인간의 착각과 그 결과를 열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의 착각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한 뒤, 그에 관한 대비책까지 이야기해 준다. 이 책은 다시 한 번 근거 없는 확신으로 가득찬 우리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장막을 걷어내고, 우리 자신과의 진실한 대면을 가능하게 해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보이지 않는 고릴라 The invisible gorilla/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지음/ 김명철 옮김. 407p, 2011. 2. 28. 1판 1쇄 인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