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 새 벽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다. 밤새 그치질 않았다.
자다가 일어나서 몇 번이나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보았다.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거기다 며칠 만에 해까지 반짝 났다.
아침 8시 우리는 모두 관광버스에 올랐다.
“사랑의 하나님, 저희들이 서천유스호스텔로 3박4일 캠프를 떠납니다. 힐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오가는 길도 지켜주세요.”
원장님이 기도를 하고 버스가 출발했다.
나는 4학년이지만 2학년인 나임이하고 짝이 됐다. 나임이는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거기다 마음까지 착해서 우리 센터에서 모두들 예뻐한다.
부천을 벗어나자 시골풍경이 나타났다. 푸른 나무들 그리고 넓게 펼쳐진 들에선 벼들이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서산휴게소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서천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와, 칼국수에 국수보다 바지락이 더 많다.”
“칼국수 맛은 국물이 생명인데 끝내준다.”
옆자리에 앉은 중학생 오빠들이 큰소리로 떠들어댄다.
거기엔 유스호스텔에 계신 선생님들 세분과 캠프진행을 해주실 목사님도 계셨다. 방 배정을 하고 도착예배를 드렸다. 예배 끝에 시편 1편을 밥 먹을 때마다 1절씩 외워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광고를 했다.
“와! 완전 부담 돼.”
“진짜, 빡세다.”
언니오빠들에게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힐링캠프 하면 즐겁게 놀고 쉬다온다는 것 아닌가? 외우는 거라면 자신 없는데 힐링캠프가 아니라 금식캠프가 되겠네.’
나도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예배 후 2부 순서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하는데도 나는 성경 암송할 일이 걱정이 되어 즐겁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왔나?’
103호실 네 명 가운데 나임이도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원장선생님이 나를 배려해 주셔서 같은 조로 짜주신 것 같았다. 사실 나하고 짝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와 일정표에 적혀있는 시편 말씀을 들여다보았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잘 외워지지 않았다. 걱정이 되고 불안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옆방에서는 자정이 넘었는데도 잠을 자기는커녕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시끌벅적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한밤중 중학생 언니 오빠들은 검은 사인펜을 들고 베란다를 넘어 들어가 자는 얼굴에다 몰래 수염을 그리기도 했다.
나는 잠이 깊이 오지 않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임이가 나하고 같이 있어주어서 고마웠다. 새벽이 되어서야 조용해졌다. 새벽 5시, 일정표를 들고 살그머니 방을 빠져나왔다.
유스호스텔 왼편으론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이 이어져 있고 그 너머에는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길가에는 수 만송이 보랏빛 맥문동 꽃이 피어있었다. 마치 프란체스카 교황이 오셨을 때 환영객들이 길가에 서서 손을 흔드는 모습같이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솔밭 길을 혼자 걸었다. 고요했다. 아직 날이 밝지 않는 미명이었다. 산도 바다도 안개 속에 묻힌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혼자 있으면 쓸쓸하구나.
한편으론 모두가 잠든 이 시간 나 혼자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는 것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