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가운데 다니엘서가 있습니다. 예언서로 보기도 하고, 묵시문학으로 보기도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다니엘을 실존 인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문학속의 인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든 저러든 다니엘서는 초인적인 믿음이 아니고는 감당키 어려운 극심한 박해가 배경입니다. 다니엘은 꿈속에서 네 마리 사나운 짐승을 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가 본 짐승들은 포악한 제국의 왕들이고, 암흑세계의 주권자들입니다. 그 네 짐승들이 전능하신 분 앞에 불려나와 심판받고 있습니다(단 7:9-14). 다니엘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는 최후 승리를 미리 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설화자는 네 짐승이 심판받고 있을 때, 다니엘의 심리적 기저에 대해서 두 번이나 언급합니다. “나 다니엘은 마음속이 괴롭고, 머리의 환상들이 나를 번민하게 해서”(단 7:15, 28) 라고. 다니엘은 전능하신 분이 암흑세계의 주권자들을 심판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마음이 불안하고 어수선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사자 우리에 던져지고, 뜨거운 불속에 던져짐에도 신앙의 정절을 굽히지 않은 다니엘입니다. 그런 다니엘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다니.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 다니엘이 서 있는 삶의 자리 곧 세계현실 때문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는 맹수와 같은 주권자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심판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밀려드는 핍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의 번민, 불안, 두려움은 오늘의 역경과 내일의 희망이 그의 삶 속에 구조적으로 얽혀 있는데서 비롯합니다. 설화자는 그걸 놓치지 않고 비록 다니엘이라 할지라도 불안정한 세계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현실을 생각하면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심리적 기저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에서도 우리는 그걸 봅니다(요 17:1-11). 만일 세상이 안정되어 있다면 당신이 떠난다 해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죽음의 공포와 메시아 출현에 대한 기대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의 심리적 기저 역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무엇보다 자기 삶을 파괴합니다. 동료 간의 불신, 갈등, 분열을 불러들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제 욕심을 채우려 달려듭니다. 그런 이유로 제자들의 하나 됨을 열망한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설명이 됩니다. 어떻게든 희망 가운데서 삶을 가꾸기 위해.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 17:11). 제자들이 “세상에 있다” 함은 현실의 불안과 내일의 기대가 혼재된 세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인식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대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이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 지극한 존중의 표현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수하 사람으로 여긴다면 이런 식의 표현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의문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을 직접 불러 말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하나 되기를 간구하신 것일까. 동료 인간끼리 하나 됨은 존재의 집인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오로지 하나님만이 움직일 수 있는 게 존재의 집입니다. 우리는 평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친절을 베푼다는 이유로. 뒷배를 봐준다는 이유로. 월급 준다는 이유로, 자신의 동기가 선하다는 이유로. 명령하고, 지시하고, 동원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다 기대에 어긋나면 ‘배신자’로 낙인찍습니다. 동료 인간을 인격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는 천박한 인간이해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러합니다. 방송 일각에서는 코미디 같은 ‘의리’ 마케팅이 한창이고, 정치권은 인간은 없고 온통 ‘경제 살리기’만이 화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불안정한 세계에서 그래도 희망으로 삶을 가꾸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부터 바꿔야 합니다. 경제 주체들이 돈보다 사람을 먼저 존중한다면 살기 힘들다는 한국 사회는 지금이라도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