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수술하신 뒤, 장흥에 격주에 한 번꼴로 내려가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성인이 되고서 이렇게 오롯이 엄마와 같이 지낸 건 처음인 듯싶다. 볍씨학교 교사가 되고부터는 학교 일에만 몰두해서 살았다. 엄마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무언가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부모님이 장흥에 내려가신 뒤론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엄마랑 요리해서 밥 먹고 산책하고 수다도 떨면서 알게 된 건, 나한테 엄마와 닮은 점이 꽤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엄마를 닮았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했었는데……. 주위 어르신들께서,

“엄마 딸인지 딱 알겠네.”

“엄마랑 웃는 게 똑같어.”

하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웃는 것만이 아니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옛날에 외할머니께 애 우는 게 어떻다고 푸념했더니 할머니가 “니가 어렸을 때 그랬어.”하셨단다. 엄마도 나도 이마 양쪽 끝이 세모꼴로 약간 파 들어간 형상이다. 우린 식성도 비슷했다. 둘 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 빵, 떡을 엄청 좋아하고, 채소를 많이 먹는다.

과일은 뭐든지 간에 다 맛있어 한다. 또 누룽지나 바싹 익혀 구운 것, 고소한 것을 좋아한다. 내가 냄비에 눌러 붙은 것을 긁어먹고 있으니까 “너도 이런 거 좋아해?” 하시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이 시간들이 감사한 건, 어렸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날 엄마가 어떤 심경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내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무엇 때문인지 느끼면서 슬픈 기억이 재해석되고 있다. 엄마가 어린 순애의 마음앓이를 헤아려주시며 오랜 상처가 아무는 순간들도 있다. 하루는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어렸을 때 네 마음을 잘 몰라줘서.”

그러며 날 꼭 안고 우셨다. 우린 그렇게 한참 울었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말씀들도 많다.

“남에게 조언을 하려 들지 않는 게 좋아. 만약 할 경우 아주 신중해야 해. 그 사람을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지 말라시더라. 그렇지 않으면 마음만 상하게 하기 쉬워. 반대로 남이 해주는 조언은 ‘네. 제가 그렇군요.’로 받는 거야.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같지만 잘 몰라. 남이 더 잘 아는 부분이 있어. 평상시 무심코 행동하는 건 남이 더 잘 알기 마련이야.”

“용서는 ‘즉시’ 하는 게 좋아. 미루지 말고.”

“성경에 보면 어떤 인물이 몇 살까지 살았다 하는 구절들이 있잖아. 그게 ‘오늘 하루씩’을 얼마나 살았는지 계수한 거라고 해. 사람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늘 오늘을 사는 거야. 과거에 연연할 필요도, 미래를 미리 그렇게 걱정할 필요도 없어.”

하루는 엄마랑 시장에 나갔다가 상추를 한 봉 샀다. 잠깐 보시더니 “좀 시들었네.” 하시길래, 냉큼 “그럼 바꾸지.” 그랬다. 엄마는 그냥 장바구니에 담으셨다. 그제야 엄마가 이전에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늘 자기가 더 좋은 걸 갖고 싶어 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다른 사람이 그 나쁜 거를 갖게 되잖아. 이기적인 마음인 거지.”

걸음을 떼고 걸어가시는 엄마를 나도 그저 뒤따랐다.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한다. 애를 낳아보지 않아서, 예전엔 이 말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져도 애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를 보면.

가끔 남동생네 집에 가서 올케가 조카 돌보는 것을 봐도 그렇다. 이유식 만들랴, 챙겨 먹이랴, 기저귀 살펴서 갈아입히랴, 아기를 위해 집 안 구석구석 청소하랴, 엄마는 쉴 틈이 없다. 아기 곁을 떠나기도 쉽지 않다. 조카는 이제 막 걷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중심을 잘 잡지 못해서 뒤로 넘어질 때가 있다. 그 때 엄마가 손닿지 않는 먼 곳에 있다간 한참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애써야 한다. 밤에 아기가 깨면 그 때마다 일어나 돌보아야 하고. 정말 자기 삶이 없다.

‘어른’이란 말을 ‘얼을 이룬 이’라고 풀이하는 분이 계셨는데,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위해 이렇게 자신의 온 삶을 다 주는 시간을 거치며 사람의 얼이 영글어가고,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수행자들이 깊은 명상을 통해 시도하는 ‘나’가 사라지는 경험을 엄마는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하는 거다. 그러면서 약했던 여성들이 강한 엄마로 거듭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꽃 중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