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교회에서 늘 듣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삭이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이야기입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몹시 배고팠습니다. 마침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는데, 빨리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꾀 많은 야곱은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팥죽을 줄 테니 장자권을 팔라는 것입니다. 성질 급한 에서는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리 하마!’, 라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형제간에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창세기는 이런 에서에 대해 “(그가) 장자의 명분을 경솔하게 여겼다”(창25:34b)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에서는 성격이 급하기만 했지 사려 깊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뒤에 드러난 일이지만, 이때 에서가 정말 장자권을 판다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야곱이 장난치는 정도로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그랬던 에서는 야곱에게 진짜 속은 것을 알고는 불같이 달려들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야곱은 평소 장자가 아닌 데 대해서 콤플렉스가 많았습니다. 어떻게든 장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런 야곱을 더욱 부추긴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한 태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이었음에도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인 야곱을 더 사랑했고, 아버지 이삭은 첫째인 에서를 더 사랑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쌍둥이 자식을 사이에 두고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철길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산 것입니다. 한 이불 덮고 자는 믿음의 부부로 보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알고 보면 그런 부부가 의외로 많습니다.

어쨌거나 당시 이들이 처한 생존 환경은 거칠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으로서는, 그처럼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서처럼 강인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었을 게 분명합니다. 어쩌면 어려서 겪은 정신적 상처, 아버지 아브라함이 어린 자신의 손발을 묶어 제물로 바치려 했을 때, ― 그걸 후세 사람들은 믿음의 순종으로 미화하고 있지만 ― 그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마음의 상처가 트라우마로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우선 자상하고, 늘 곁에 있는 아들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야곱이 유약했기에 모성이 더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출가한 후로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했던 리브가로서는 고향의 부모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런 리브가로서는 외삼촌을 꼭 빼닮은 야곱을 늘 곁에 두고 위로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속임수에 능했던 사람입니다. 야곱의 속임수는 집안의 내력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야곱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그가 한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경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로 보면 야곱이 장자권을 획득했다기보다, 에서가 버린 장자권이 야곱에게 돌아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은혜로 얻은 것이지요. 당시 장자권은 아버지 유산의 큰 몫을 물려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족에 대한 지배권이기도 했습니다. 한 부족의 생사가 장자에게 달려 있었으니, 저 옛날 족장을 통해 전승된 믿음의 계보는 불가피 그에 적합한 사람이 선택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몸은 유약했을지라도 책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지닌 아들, 그리고 눈앞의 다급함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사려 깊음이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제단과 장막이라는 말이 나옵니다(히13:10). 믿는 이들의 삶의 성향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은유입니다.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성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처소이고, 영원성과 거룩성이 깃드는 곳입니다. 이에 비해 장막(텐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세속생활의 거처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삶에서 장막은 제단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장막 생활의 풍요로움은 그 중심이 제단을 지향할 때입니다. 만일 제단을 멀리하고 장막 중심으로만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 중심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생활이요, 미래가 없는 생활입니다. 이로 보면 이삭은 장막 중심으로만 산 사람이고, 야곱은 제단을 중심으로 산 사람입니다.

허물이 많기로는 에서나 야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야곱의 허물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에서와 야곱이 다른 결정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에서는 눈앞의 배부름에 만족했고, 야곱은 역경을 마다 않고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전승된 내일의 약속을 지향해 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단히 야곱의 믿음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로는 에서 못지않게, 불같은 열정으로, 세속의 성공과 부유함에 매달려 산다는 것입니다.

생명!
환희!
이슬비 맞으며 걷는 길
주목이 나를 반기네
님들과 소리 없이 걷는 길
내 마음에 평화내리네.
무엇인가 손질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할머니들
살아있음이 좋다.
아름다운 집들 사이로 난 길
그 길 사이로 오르막 흙길이 보인다.
계곡물이 흐른다.
사랑하는 벗들과 소근 소근

살아 숨쉬고
대지와 함께 호흡하니 넘 좋다
생명의 환희
비 내리는 오후 산책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