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년 후, 일흔이 넘은 나는 산과 들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넓은 창이 있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빈둥빈둥 연애소설을 읽고 있을 것 같다. 탁자 위에는 여러 권의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고 음질 좋은 음향기를 통해 음악이 계속 흘러나올 것이다. 남편 역시 두꺼운 안경을 끼고 내 곁에서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도덕과 선” 같은 무슨 말인지 모를 책들을…. 그때쯤이면 아들은 스포츠 캐스터나 기자가 되어서 국내외를 바쁘게 왔다 갔다 하겠지. 나는 가까이 있는 친구 혹은 선후배들을 만나 차 茶와 함께 담소도 나누고 마음이 동하면 훌렁 배낭을 걸머지고 여행길에 오르기도 할 것이다.

한 달에 두어 번 ‘생명의전화’에 가서 마음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을 것이다. 아! 그리고 다시 클래식 기타를 시작해야지. 20대 후반 부산의 메리놀 간호전문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때, 광복동 어느 클래식 기타학원에서 배영식 선생님의 지도로 매일 저녁 2시간씩 기타를 치고 기숙사에 돌아오곤 하였다. 그때는 “알함브라궁의 추억”도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었는데…. 3년 후 서울로 올라오고부터는 기타에서 손을 놓았다. 그리곤 딱딱하게 굳었던 손끝이 다시 보드라워지면서 기타와는 거리가 멀어졌었다.

지금도 나는 대학입시 면접 때마다 수험생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학생은 지금부터 10년 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무슨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가?” 이 질문은 내가 대학 4학년 때 안과학 교수였던 이명수 교수님으로 받았던 질문이다. 뜬금없이 학기 종강시간에 백지를 한 장씩 나누어주시더니 “10년 후의 나”에 대해 쓰라는 것이었다. 30명쯤 되는 친구 대부분이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결혼하여 아이와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주부로써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10년 후의 내 모습을 삼면 三面이 책으로 쌓여 있고 한쪽 면에는 LP레코드판이 가득하고 탁자 위에는 헤르만 헤세의 책 등이 놓여 있는 가운데 음악 속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풍경을 그렸다.

졸업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교수님께선 우리들이 적어 냈던 “10년 후의 나”를 모두 돌려주셨는데 놀라운 것은 우리들 대부분 그 모습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모습을 보니 그때 적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연구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랬다.

그리 소망하지는 않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어떤 꿈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우리 모두는 평소 생각한 내용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우리는 다 안다. 가령 눈을 감고 집에 있다고 상상해보라. 주방으로 들어가서 냉장고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그려보라. 냉장고 문을 열고 야채서랍을 열어보니 그 속에 크고 환한 노란색의 레몬이 가득 들어 있다. 하나 꺼내들고 노랗고 윤기 나는 울퉁불퉁한 껍질을 주목해보라. 손으로 레몬의 무게도 느껴보고 레몬을 칼로 반을 잘라서 유리컵에 손으로 꽉 짜 보라. 그러고 나서 눈을 떠보라. 입안에 무엇이 가득 고였는가? 새큼한 레몬 향도 느낄 수 있다. 맛과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이렇듯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즉시 몸에 나타난다.

단 한번으로 그치는 생각은 큰 힘이 없을지 모르지만 특정한 생각을 반복하다보면 생각은 그러한 반복을 통해 집중되고 정리되어서 그 힘이 몇 배로 확대된다.

지금 예순이 넘은 이 시점에서 다시 10년 후의 나를 생각해보는 것은 상상 속의 모습이 실제 10년 후의 모습이 될 터이니, 신중하게 생각해서 상상해야겠다. 그렇더라도 책 속에 묻혀 책이 열어주는 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고, 기타와 여행과 만남이 있는 상상 속에서 내가 흐뭇해지니, 10년 후의 나는... 아마도 그러하리라!